Q. 구한말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된 계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민씨 척족정권에 대한 대원군 중심의 수구파 정쟁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시각 하나로 접근하기 보다는 좀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종을 비롯하여 민씨척족정권들이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이나 구미제국과 함께 교섭 통상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로써 개화파와 수구파의 반목이 점차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이러한 가운데 개화파 관료가 제도 개혁에 따라서 대거로 등장하게 되자 수구파의 반발이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특히 5영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무의 장어 2영을 설치하면서 별기군을 창설하는 군제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 당시에 구 5영 소속의 군병들의 불만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고 해요.1881년 전개되었던 수구파의 위정척사론과 이재선, 안기영과 같은 자들의 토왜반정음모사건을 계기로 하여 민씨척족정권이 대원군파와 특히 남인 계열의 수구파와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규모의 탄압을 겪게 되면서 지배층의 분열이 극도로 달하게 되었고 이외에도 민씨척족정권의 인사행정의 문란, 매관매직, 관료층 부패, 일본의 경제적 침략 과 같이 여러가지 사건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면서 임오군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미 임오군란이 일어나기도 전에 많은 군병들의 불만이 극도로 치달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군제 개혁이 일어난 뒤에 구 5영 소속의 군병들이 대부분 그 직업을 잃게 되었고 신설된 별기군에 의해서 그나마 남아있던 군병들의 환경 역시 열악한 상태였다고 해요. 또 구 5영 소속이었던 군병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못하고 13개월이나 군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그들은 군로 관로였던 선혜청당상 민경호와 전 당상이었던 경기 관찰사 김보현에게 원한을 품게 됩니다.1882년 전라도조미가 당도하게 되자 구훈련도감 군병들에게 한달치에 해당하는 군료를 주긴 했지만 이미 밀려있었던 양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라고 그마저도 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고 한달치 보다 양이 반이나 모자랐기 때문에 그들의 민심을 잠재울 수 있을리가 없었다고 해요.결국 포수였던 김춘영과 유복만 등이 선혜청 곶기와 무위영 영관에게 이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시비가 더욱 심화되었고, 다른 군병들도 그들의 편을 들면서 함께 항의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궁중에 있었던 민겸호가 이 소식을 들은 다음 주동자들을 거두어 포도청에 가두어 버렸으며 고문을 가한 뒤 처형하게 되는데, 이 소식에 분노하게 된 군병들이 경분하여 통문을 발송하였고 결집하여 싸울 것을 호소하게 됩니다.마침내 이것은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군병들은 민경호의 집을 습격하여 행동방침을 결정하기 위해서 대원군과 함께 손을 잡고 그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당시 대원군이 군병 대포자들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는지 그 자세한 내용이 지금까지 전달되는 것은 없지만 전반적인 흐름과 행동을 보았을 때 전해에 있었던 이재선의 거행 계획이 실행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또 대원군의 심복이었던 허욱이 군병으로 변장 한 뒤 군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군병들은 경기감영의 무기고를 공격한 다음 포도청에 난입하여 붙잡혀있던 동료들을 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Q. 경고를 나타내는 싸이렌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이렌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의 이름입니다.신체의 반은 새이고 반은 사람인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켰죠.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도 사이렌이 등장하는데,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이 활동하는 지역에 다다랐을 때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틀어막아 그 위험을 벗어나도록 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오늘날과 같이 일정한 음높이의 소리를 내는 경보장치인 사이렌은 1819년 프랑스의 C. C. 투르라는 발명가가 사이렌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 되었습니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이라는 마녀가 소리로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한 데 착안하여, 소리로 위험을 알려주는 경보장치에 그 이름을 따다 붙인 것이죠.지금은 신화 속의 인물보다는 경보장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Q. 탄산음료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가장 먼저 알아볼 탄산음료 유래로는 바로땅 속에서 솟아나는 광천수, 라는것이 그 뿌리라고 합니다.유럽사람들이 주로 마시거나 목욕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이 광천수로 목욕을 하면은 병을 치료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도 하네요.지금 우리 나라로 따지면 약수, 온천수 같은 의미를 지녔던거 같아요.광천수가 탄산음료 유래 이기에 이 부분을 조금 더 알아보고자 하는데요.자고로 이 광천수는 과거 우리 지구는 교통의 발달이 덜 되었기 때문에 18세기경에는귀족들이나 부자들만이 이 물이 나오는 곳을찾아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그래서 평민들에게는 부러움의 상징이기도 했던게 광천수랍니다.그렇게 탄산음료 유래 이자 뿌리이던 이 광천수가 1767년 영국의 과학자 조셉 프리스틀리에 의해서광천수와 비슷한 인공적인 물로 개발이 되었답니다.그는 양조장 발효 통 안에서 거품이 생기고 하는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그리고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는 가스의 정체를 찾아내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하네요일단 공기보다는 무겁고, 물에는 녹는 현상을 발견 해 냈답니다.그러나 이 가스는 바로 그가 발견 하기 전 12년전에 조지프 블랙이 발견한이산화탄소였는데요.여기서 탄산음료 유래 ! 정확한 탄산은 바로 이산화탄소가 녹은 물이 탄산수라고 하네요~그리고 화학자이자 약제사인 토마스 헨리가 자신이 만든 탄산수를 의약품으로 판매 하기도 했었고요.그리고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이는 뉴욕으로 이민간 영국인 존 매튜스의 역할이 컸다고 해요.그리고 본격적인 우리가 아는 그 음료,탄산음료 유래 시작은 여기서 부터 인데요.미국인들은 이 탄산수에 딸기라던지 레몬등의 시럽을 첨가하여 음료로 마시기 시작하면서, 대량생산까지도이어졌다고 합니다.
Q. 영조 임금의 어머니는 무수리라고 하던데 무수리 아들이 어떻게 왕에 올랐나요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조는어머니가 궁중 나인들의 빨래나 허드렛일을 거들어주는 무수리 출신이었어요.경종의 배다른 아우였지만 경종과는 급이 달랐죠.권력을 쥔 노론 세력들은 힘이 약한 경종에게 동생 연잉군(영조)을 세제로 세우라고 압박했어요.어느 왕이 자신이 아직 젊은데(31 세) 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겠어요.(세제 옹립, 조선 유일한 사건)노론 세력은 여러 희생을 감내하고 경종이 일찍 죽자(죽였다고도) 연잉군을 왕으로 세울 수 있었어요.노론은 자신들이 택군擇君을 하여 만든 왕, 노론의 하인이었다가 궁중 무수리로 들어간 여인의 아들, 왕세제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만들어가며 세운 왕.노론은 영조를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왕이 된 영조는 노론과 소론을 적절히 배분해가며 정치를 펼쳤고 국정을 잘 이끌었습니다.소론 준론(강경파)과 남인 무리들이 이인좌의 난을 일으켰음에도 영조는 흔들리지 않고 소론 완론(온건파)을 믿고 이 난리를 정리했어요.그렇게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