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갑신정변이후 한반도 중립화론 중 조선 주재 독일영사였던 부들러의 중립화론과 유길준의 중립화론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반도의 중립화론에 대해 두 주요 인물인 부들러와 유길준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각 스위스식 중립과 벨기에식 중립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스위스식 중립은 스위스가 국제 갈등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모든 국가와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외부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외국의 영향이나 압력에서 자유로움을 의미하며, 스위스가 지키고 있는 전통적인 중립정책의 한 형태입니다.반면, 벨기에식 중립은 외국의 보장을 받는 상태에서의 중립을 의미합니다. 1839년 런던조약에 따라 벨기에는 영국, 프랑스,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5개국이 그 중립을 보장하는 조약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벨기에식 중립은 다른 국가들의 보장 아래에 중립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부들러의 중립화론과 유길준의 중립화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부들러의 중립화론은 스위스식 중립을 주장하였습니다. 즉, 조선이 국제 갈등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외부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제법을 통해 자신의 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반면, 유길준의 중립화론은 벨기에식 중립을 주장하였습니다. 즉, 외국의 보장을 받는 상태에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5개 강국(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보호를 받아 조선이 중립국가로 선언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따라서, 두 중립화론의 차이는 중립의 유지 방식과 그 보장 주체에 있습니다. 부들러의 경우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 중시하였다면, 유길준의 경우 외부의 보장 아래에서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Q. 갑오개혁시 김홍집은 왜 흥선대원군을 섭정하게 하였나요?
갑오개혁의 중요한 주역인 김홍집이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올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갑오개혁의 목적 중 하나는 청나라의 간섭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청나라가 요구한 사직(사직제 도입)를 반대하는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두는 것은 청나라의 간섭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또한 김홍집은 개혁의 주역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갑오개혁을 무사히 진행하기 위해선 권력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때 그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이었습니다.마지막으로 흥선대원군은 과거 병진양요(병자호란) 때 세자였던 철종을 대신하여 청나라의 침략을 막아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전력으로 인해 대중에게 어느 정도 인기와 권위가 있었고, 이를 활용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갑오개혁 이후 김홍집은 흥선대원군에게 숙청당하고, 흥선대원군은 궁중정치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아 이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는 등의 권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김홍집이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두었던 결정이 그에게는 큰 잘못이었지만, 개혁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 장애인종합복지관 역사가 궁금합니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과 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관에 대한 정확한 역사를 담은 공식 기록은 복지관에 따라 다르며,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2021년 9월까지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장애인 복지는 1981년부터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해는 '유엔장애인년'으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여 '장애인 복지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법은 장애인의 복지와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그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며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장애인 종합 복지관 등 다양한 서비스 및 시설들이 설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설들은 장애인들의 일상생활 지원, 직업 훈련, 문화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들의 사회 참여를 돕고 있습니다.최근의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는 기본권 보장과 사회통합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장애인 종합 복지관 및 관련 서비스와 시설들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좀 더 자세한 정보는 해당 복지관이나 장애인 복지에 관련된 공식 웹사이트, 정부기관 등에 문의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그네는 언제 부터 사용하게 되었나요?
그네는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즐겨 사용해온 놀이 도구 중 하나로, 그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그네를 타는 것은 지구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며,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만들어져 왔습니다.고대 그리스의 도자기나 그림에서도 그네를 타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며, 이는 그네가 BC 5세기 이전의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이미 널리 쓰였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각지의 고대 문화에서도 그네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따라서 그네는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확한 기원이나 언제 처음으로 그네가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네는 그 단순성과 즐거움 때문에 아마도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인도의 주요 언어였으며, 많은 고전적인 인도 문학과 철학, 종교적 텍스트는 이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어 가족의 인도-유럽어 계열에 속하며, 이 계열의 언어들은 공통의 어근을 가진 많은 유럽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직접적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것은 아닙니다. 영어와 산스크리트어 모두 인도-유럽어 계열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일부 공통적인 어근을 공유하고 있을 뿐입니다.현재 산스크리트어는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적, 철학적 텍스트를 연구하거나 읽기 위해 이 언어를 배우고 사용합니다. 또한 인도의 일부 학문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학문 언어로 간주되며, 일부 종교 의식에서는 여전히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합니다.따라서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언어들도 고대에는 널리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주로 학문적인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Q. 환경오염의 주범, 플라스틱이 발명 된 때는 언제인가요?
가족시민님 안녕하세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처음 개발되었던 시기는 19세기 후반, 즉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발명된 초기 플라스틱은 자연 고무의 대체품을 찾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69년에 미국의 발명가인 존 웨슬리 하이어트가 창조한 것으로, 그의 목표는 천연 고무의 대체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이어트는 천연 고무의 특성을 흉내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발명품은 완전한 대체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을 발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그 후, 1907년에 레오 Hendrik Baekeland라는 벨기에 출신의 미국 화학자가 베이컬라이트를 발명했습니다. 베이컬라이트는 최초의 완전 합성 플라스틱으로, 이후 다양한 플라스틱의 발명과 활용에 획을 그은 역사적인 발명품입니다.
Q. 역사 문헌에서 모계의 성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면 언제 그랬나요?
고대 한반도의 사회 구조는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모계 중심사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회 구조는 고조선의 부족 연맹 체제, 삼국시대의 연맹 국가 체제, 그리고 중앙 집권 국가 체제로 변화했습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부족의 중심이었던 여성이 사회, 경제, 종교 등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신라의 왕권 공고화 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신라의 근래왕(근본왕)이 웅녀와 결혼하여 난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사례, 진덕왕의 시조인 김유신이 그의 모친인 삼촌부인의 성을 계승한 것 등은 모계 중심 사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신라 초기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왕의 외조카가 왕위를 계승하는 모계 중심의 상속 제도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6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신라는 성계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국가 구조도 중앙집권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고, 이런 변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점차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사회는 여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했고, 성(姓)도 아버지 쪽을 따르는 성계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주로 고조선과 삼한 기간의 유물과 기록들을 통한 추론에 불과하며, 명확하게 이 기간이 모계 중심사회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Q. 계급사회가 있는 나라가 지금도 존재하나요?
현대 사회에서도 계급제도나 성질이 비슷한 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는 몇몇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인도의 카스트 (Caste) 제도입니다.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고대 힌두교의 사회적, 종교적 관행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네 개의 주요 계급으로 나눕니다:Brahmin (사제)Kshatriya (전사)Vaishya (상인)Shudra (노동자)이외에도 "Dalit" 또는 "Untouchable"라고 불리우는 계급이 존재하며, 이들은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사회적 차별을 받는 상황입니다.각 계급은 전통적으로 특정 직업을 가지며, 결혼과 상호 소통도 주로 같은 계급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각 계급은 특정한 권리, 의무 및 제한을 받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사람들의 기본 인권을 침해하고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인도 정부와 여러 국제 인권 기구는 이러한 차별적인 제도를 폐지하고, 사회적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제도는 일상 생활과 문화, 심지어 정치에까지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인도뿐만 아니라 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다른 예로는 영국의 귀족제도가 있습니다. 귀족 계급은 역사적으로 특권과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역할과 영향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귀족 계급은 여전히 영국의 상원 의원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이처럼 계급제도는 여전히 전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그 형태와 특성은 각 지역의 문화, 역사, 정치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Q. 대마도의 역사에 대해 알고싶어요
대마도는 한반도 서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약 1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마도는 고구려 시대부터 중세 시대까지 한반도의 주요 국가들에 의해 통치 받았으며, 특히 조선 시대에는 황해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주요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대마도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사회 구조 등이 한반도와 매우 유사하게 발전하였습니다.그러나 대마도는 일본이 1905년 을사오적에 의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든 후, 1910년 조선을 병합하면서 일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후 대마도는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일본의 행정 구조와 법률, 그리고 교육 체제 등이 도입되었습니다.일본이 1945년 8월 15일에 항복하면서 대마도는 잠시 자유를 찾았으나, 곧 이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 시대의 영향으로 대마도는 그대로 일본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2년 한반도의 해양 경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마도는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데, 이 때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포함한 해양 경계선을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현재 대마도는 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지만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 등이 대마도 사람들에게 깊이 뿌리내려 있어, 대마도의 정체성과 그 소속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서는 여전히 대마도의 주권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