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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림
아름드림23.05.25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미술작품과 특징은 어떠한지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신사임당은 미술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작품과 작품의 특징은 어떠한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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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은 5만원권 지폐 인물인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와 그림 글씨에 능력이 출중했던 예술가 였습니다.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선전기에 그렸던 [초충도] [자리도] [노안도]인데요.

    그중 개인적으로 초충도를 대표작으로 하나 꼽고 싶습니다. 신사임당은 그림을 그릴 때 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그리고 화초와 벌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는데요 산수에 있어서는 안견(安堅)을 따랐다고 전해집니다. 그중 초충도는 여덟 폭 병풍중 한폭에 그려진 그림으로 수박 및 생쥐와 나비 등의 표현에서 섬세한 필선, 선명한 색채, 안정된 구도 등을 보이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신사임당의 그림 특징으로는 그림에서 섬세한 선과 조화로운 색상이 사용되며, 아름다운 형태와 디테일이 돋보이고 그림에 그려진 사물들은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며, 현실감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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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류작가는 신사임당이 대표적 입니다.

    직업 화가가 아니었기에 더 자유로운 양식의 작품이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초기는 고려시대의 화풍과 중국회화를 수용한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묵으로 그려진 관념 산수화가 지배적 이었는데요.

    관념산수화란 실제 자연의 모습이 아닌 상상한 모습을 유토피아적 시간으로 그려낸 방식 입니다.

    반면 신사임당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벌레와 과일, 꽃 등을 면밀하게 관찰해 사실주의적 시각을 토대로 작품이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신사임당의 대표적 작품은 조충도수병이 있습니다.

    조충도 수병은 닭이 실제 풀벌레로 착각해 그림을 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이 작품을 바탕으로 수를 놓아 병풍을 만들게 됐는데 8폭 병풍 가운데 7번째 작품 입니다.

    신사임당은 누구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지나쳐 버릴 법도 하지만 주위의 사물에 관심을 가지며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았으면 이러한 소박한 주제가 의미를 부여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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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충도(草蟲圖)는 야생의 풀과 곤충을 그린 그림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한 배경에는 어떤 심성이 작용하고 있었는가를 살피고, 소재와 표현 방법을 살펴 한국적 미의식의 실체를 파악해 본다.

    ................................................................

    화가 및 작품내력

    시·서·화에 두루 능했던 사임당은 신명화(申命和)의 둘째 딸로 태어나 감찰 이원수(李元秀)에게 출가하여 높은 인품과 조선 유학의 거유(巨儒)인 율곡 이이(李珥)를 낳아 오늘날도 사표(師表)로 크게 칭송 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 상이다.

    《율곡집》에 나오는 그림에 관계된 글을 살펴보면, 7세 때부터 안견(安堅)의 그림을 따라 배우기 시작하여 산수·포도·화훼·초충 등을 즐겨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유작들이 다수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초충도류가 단연 뛰어나다.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충도〉는 사임당 신씨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종이에 채색을 사용하여 그린 〈초충도〉는 현재 10폭으로 꾸며져 있는데, <!-- badtag filtered -->8폭은 그림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2폭에는 신경(申暻)과 오세창(吳世昌)의 발문이 적혀 있다.

    발문에 따르면 신경이 율곡과 동시대인 이양원(李陽元)이 간직했던 것을 그 후손에게서 구입하여, 당시 정필동(鄭必東)이 지니고 있던 진품과 비교한 후 사임당의 소작으로 단정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 이 〈초충도〉를 사임당 신씨의 그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전(傳)’ 자를 이름 앞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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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으로는 자리도, 초충도, 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세종 때 안견의 몽유도원도, 적벽도, 청산백운도 등의 산수화를 보면서 모방해 그렸고 특히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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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여류화가이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고 자수도 잘 하였다. 그림에 있어서는 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그리고 화초와 벌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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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5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고의 여성상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당호를 지었는데, 신사임당을 평한 사람들 중에는 온아한 천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태임의 덕을 배우고 본뜬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요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평가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준 좋은 환경이 있었습니다. 신사임당의 재능은 이미 7세에 안견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했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나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것 등은 섬세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격만큼이나 그림 · 글씨 · 시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 · 포도 · 화조 · 어죽(魚竹) · 매화 · 난초 · 산수 등이 주된 화제(畫題)입니다.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그림에 후세의 시인 · 학자들이 발문을 붙였는데 한결같이 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으로 채색화 · 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림도 수십 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씨로는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 폭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몇 조각의 글씨에서 고상한 정신과 기백을 볼 수 있습니다. 1868년 강릉부사로 간 윤종의는 신사임당의 글씨를 영원히 후세에 남기고자 그 글씨를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발문을 적었습니다. 거기서 신사임당의 글씨를 “정성들여 그은 획이 그윽하고 고상하여 정결하고 고요하여 부인께서 더욱더 저 태임의 덕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격찬하였습니다. 그녀의 글씨는 그야말로 말발굽과 누에 머리[馬蹄蠶頭]라는 체법에 의한 본격적인 글씨였습니다. 그러므로 절묘한 예술적 재능에 대여 명종 때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사임당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 다음에 간다.’라고 합니다. 어찌 부녀자의 그림이라 하여 경홀히 여길 것이며, 또 어찌 부녀자에게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나무랄 수 있을 것이랴.”라고 격찬하였습니다.

    신사임당의 자녀들 중 훈도와 감화를 제일 많이 받은 것은 셋째 아들 이이(李珥)입니다.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행장기를 저술했는데, 이이는 여기에서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천품, 정결한 지조, 순효(純孝)한 성품 등을 소상히 밝혔습니다. 윤종섭(尹鍾燮)은 이이와 같은 대성인이 태어난 것은 태임을 본받은 신사임당의 태교에 있음을 시로 읊어 예찬하였습니다. 신사임당은 실로 현모로서 아들 이이는 백대의 스승으로, 아들 이우와 큰딸 이매창은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키웠습니다. 작품으로는 「자리도(紫鯉圖)」 · 「산수도(山水圖)」 · 「초충도(草蟲圖)」 · 「노안도(蘆雁圖)」 · 「연로도(蓮鷺圖)」 · 「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와 6폭초서병풍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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