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와 일본 간에 진행되던 강화 교섭이 1596년 9월 오사카회견〔大阪會見〕에서 그 기만성이 드러나면서 결렬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요구한 화평 조건 7개조에는 명 황녀를 후비(后妃)로 보낼 것, 조선 남부 4개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등 명나라와 조선이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섭을 담당한 심유경 등이 교섭 조건을 숨긴 채 명 황제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동시에 기만하면서 무리하게 이어 오다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분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재차 조선 침략을 위한 군사를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