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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12.19

급진개혁파였던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고려 급진개혁파로 위화도 회군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왕의 자리에 올랐는데요.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반대하면서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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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름에는 농사가 바빠 군사를 동원하기 어렵다.

    많은 군사를 움직이게 되면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장마철이라 덥고 습해 전염병에 걸릴 것이다 등의 이유로 요동정벌을 반대하였습니다

    이 4가지를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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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인해 고려 내부에서는 최영을 중심으로 요동 정벌을 주장하는 의견이 모아졌으나,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우며 전쟁을 피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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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동정벌에 반대 했으니까 위화도 회군을 한겁니다

    이성계는 지금 나라가 망하고 있는데 전쟁을 어떻게 하냐 당장 나라 청소부터 해야한다 라는 입장이었는데

    왕이랑 귀족들이 "걍 요동에 전쟁하러 꺼져 "하니까

    일단 가는 척 했다가 그렇게 모인 군사를 위화도에서 유턴 시킨게 위화도 회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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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가 명나라의 요동을 공격하면 안되는 4가지 이유를 4대 불가지론 이라고 하는데 우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두번째로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번째 왜구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장마철에 물이 불어 압록강을 건너기가 어렵다 라는 이유로 반대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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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왕과 최영 장군은 원을 멸망시킨 명의 주원장시 더 많은 조공을 바칠 것과 철령 이북 땅을 요구한데 대해 요동정벌로 답하고자 북벌을 계획합니다. 허나 이성계는 왕명이기에 따랐지만 4불가론을 주장하며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선 건국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4불가론은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고 둘째 여름철 거병으로 농사를 망치고 셋째 장마철이어서 전염병과 활의 야교가 무뎌지며 넷째 북쪽을 공격하면 남쪽에서 왜구의 침입이 잦아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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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동정벌이 과연 시작이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데 장애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반대하며 내세운 4불가론이 고스란히 당시에도 적용되었다. 당장 고려 말 고려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은 왜구는 아직도 해안가를 침범하고 있어서 국가적인 문제였다. 세종 때까지 왜구가 기승을 부려서 세종은 해안가를 포기할 생각까지 하다가 상왕 태종이 주관해서 대마도 정벌까지 해서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왜구를 확실히 족칠 정도의 군사력을 준비하는데 세종 즉위년까지의 안정기가 필요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남쪽에 덤비는 왜구는 냅두고 원정군을 편성하는 건 비현실적이었다. 최소한 박위가 한 것 같은 대마도 원정 등으로 남쪽을 안전시키는데 우선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정도전을 지지하는 남은 정도를 제외하면 요동정벌에 찬성하는 여론은 강하지 않았다. 그럼 반대파를 전부 무시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정군은 누가 이끌고 후방은 누가 책임지는냐는 걸림돌이 생긴다. 원정군의 중요성과 경험과 군사적 능력, 여진족에 대한 영향력을 볼 때 최고의 선택은 이성계의 친정과 정도전의 후방 보좌가 이상적이었다. 유방-소하, 조조-순욱과 같은 예에서 보듯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시너지 효과도 높았다. 하지만 요동정벌은 여론도 안 좋았고 정안군을 중심으로 하는 반 정도전 파벌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이성계가 정도전만 내버려두고 원정을 가기는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성계도 이미 나이가 60세가 넘었고 당시에 병도 자주 앓았다. 건강해도 군대를 이끌기 어렵고 아직 어리고 배경도 미약한 세자를 두고 멀리 나갔다가 변이라도 생기면 살벌한 이복형제들에게 둘려싸인 세자의 지위만 위태롭다. 요동정벌로 정도전에 대한 여론도 안 좋은데 이성계가 없고 정도전과 세자만 둘 수 없었다.

    여기에 이성계가 후방 지휘를 한다면 누구에게 원정군을 맡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성계 본인이 요동 원정군을 이끌고 가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경력자였다. 이번 요동정벌도 똑같이 반대여론을 등에 업고 나서는 행복한 군인이 또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럼 정도전이 야전지휘를 한다? 백면서생의 정도전은 진도훈련과 같은 군사적 지식은 있었지만 실전 즉 야전 지휘는 다른 문제다. 제갈량 같은 군재를 보이지 않는 이상에 패망은 확실했고, 실제로도 조괄이라는 이론만 빠삭하고 실전에 무지한 사례가 있었다. 야전 지휘관으로 잔뼈가 굵은 이성계가 아무리 정도전을 신임한다 해도 국내행정이 아닌 전장 지휘를 맡기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이성계를 제외하고 그 누가 중대한 원정을 지휘할 군사적 재능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상승장군인 이성계도 힘든 일인데 가능한 인물이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맡기더라도 불안요소는 결국은 남았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친을 붙이는 게 제일 효과적인데, 만약에 원정군에 따라간 종친이 공을 세우고 군심을 모아서 왕위를 노린다면? 정종 이방과처럼 우직하고 군사적 능력도 있는 사람은 믿을 수 있지만 이방간, 이방원 같은 야심가는? 그렇다고 이방과만 보내야 하는가? 대병력을 지휘하려면 야전지휘관이 더 필요한데 종친을 더 보내야 맞지 않는가? 이미 출정은 고사하고 진도강습조차 사병을 빼앗겨 이 가는 소리가 도성에 울려퍼지는 종친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것이 당시 요동정벌 준비의 현실이었다.

    게다가 정도전의 친구들조차도 사병혁파가 아닌 요동정벌 자체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정황이 보이는데, 태조 7년 8월의 진도강습 태만 처벌대상자 명단을 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은, 이제, 이방번, 유만수, 이무, 이지, 정신의 같은 친정도전파 인사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다. 특히 남은은 정도전과 함께 대놓고 조준 등 반대파를 막으러 다녔던 사람인데도 강습태만으로 처벌받을 지경이었으니 나름 추진세력이라는 이들부터가 이모양인데 반대파는 말 할 것도 없었다.

    고려하면 할수록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고 세자의 지위가 불안하고 반대파가 강성한 상황에서 소수만으로 전쟁을 강행하기에는 무리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다 김사형의 말마따나 도성 공역으로 백성들이 부역에 시달린지도 얼마 안 되는데다가 조준의 말대로 대외적으로 왜구의 침입으로 내부적으로 어수선하고 피해가 속출하는 와중에 전쟁을 벌이는 건 힘들었다. 제일 중요한 이성계는 와병 중이어서 정치적으로 안정도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실록을 보면 문제의 태조 7년은 툭하면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는 악천후가 이어져 몇번이나 법회를 열어댔고, 심지어 태조 본인도 우박이 내리고 강풍이 부는 날 무리하게 흥천사에 거둥했다가 무인정사의 빌미가 되는 병이 들었을 정도다. 날씨가 이러면 작황이 어떨지야 뻔하고, 이쯤되면 요동출병이 아니라 당장 유민진휼부터 고민해야 정상이다. 군량미가 없는데 무슨수로 방어전도 아니고 원정을 나간단 말인가?

    굳이 태조 7년에 출병할 필요 없이 병력을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출병하면 된다고 주장할수도 있으나, 병력을 소집하여 훈련시키는 자체가 막대한 재원을 소모하는 일이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노동력은 곧 생산력으로 직결되는데 보인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태종시기 정병:보인의 비율은 1:3이었으니 이 정병을 모두 소집하면 15~60세 양인남성의 1/4이 병영에 꽁꽁 묶인다는 소리다. 농한기에야 그렇다 쳐도 농번기에 이랬다간 난리난다. 하지만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듯이 요동 주둔병력만 10만에 그 뒤에는 주체가 이끄는 최정예 연군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이 정도의 병력이 있어야 뭐라도 해 볼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게다가 방어전도 아니고 공격전이니 병력들의 훈련도도 일정수준 챙겨야 했고 그러자면 농한기에만 반짝 소집하는것으로는 부족했다. 정난의 변에 맞춰 공격하면 요동군을 조선과 연이 동시에 협공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횡행하지만, 정난의 변 당시 연군의 상황을 보면 수십만씩 몰려오는 적을 요격하기에 바쁘지 요동군에게 선공을 걸거나 할 태평한 상황이 전혀 아니다. 게다가 연왕이 조선과 상대할테니 꿀빠는건 건문제지 조선이 아니다. 또 어느쪽이 이기더라도 명나라의 내전이 끝난 뒤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다.

    이렇다보니 정도전의 요동정벌이 진심으로 요동으로 정벌하는 게 아니라 명의 압박으로 불안해진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명의 요구를 빌미로 정도전을 어떻게든 실각시키려는 세력에 대항해서 명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자신의 실각의 빌미인 명의 요구를 차단하고(전쟁 상대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 전쟁을 상황에서 국가적 단결을 촉구하고 반대파를 누르고, 진법 훈련과 군사력 강화를 이유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권을 회수해서 위협요소를 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일 뿐 실제로 싸울 생각은 없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위기 조성으로 돌파하는 방법이라는 것. 그러나 이건 이것대로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차라리 진짜 출병이면 요동 영지나 군공이라는 떡고물로 온건파 종친들을 회유할 가능성이라도 있지, 출병이 없다면 종친들로써는 아예 어떤 떡고물도 없이 그냥 눈 뜨고 자기 세력기반만 뺏기는 꼴이 된다.

    다만 준비하고서 얼마 안돼서 정도전과 일파가 숙청되고 중국도 황제가 교체되는 등 전쟁을 준비한 시간이 길지는 않고 반대도 심하다보니 실제로 어느 선까지 나아갈 지 세부적인 전쟁 계획은 어떻게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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