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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1.14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최근 바티칸에 최초로 동양인 성상이 설치되었다고 하는데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라고 하는데 어떤 일을 하셨던 분인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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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증조부 김진후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따라 그곳에서 성장했으며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습니다.

    1836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15세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로 가게 되며 그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후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합니다.

    그 뒤 조선교구 제 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의 지시로 동북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하나 여의치 못해 다시 만주로 돌아갔고 그동안에 꾸준히 신학을 공부, 1844년 부제가 됩니다.

    그 해 말 서북국경선을 돌파하고 1845년 1월 10년만에 귀국해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 완당신학교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 신부가 됩니다.

    같은해 8월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와 서울에 돌아와 활발한 전교활동을 하며 1846년 5월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 순위도에서 체포, 서울로 압송 뒤 문초를 통해 국금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및 천주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임이 밝혀집니다.

    이에 정부는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율을 적용, 군문효수형을 선고하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하는데 당시 나이가 25살 입니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이라 불리는 김대건의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여의 단기간 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 한국인 성직자의 자질과 사목능력을 입증해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줬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삼으며 1925년 로마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됩니다.

    2019년 11월 유네스코 제 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해서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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