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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아리따운안경곰7023.06.01

고려 무신집권기에 지눌의 '권수정혜결사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고려시대 무신집권기에 지눌은 불교 정화 운동을 추진하며 '권수정혜결사문'을 집필했다고 알고 있는데

'권수정혜결사문'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불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 나타낸 것인가요?

당시 '권수정혜결사문'에서

지눌이 바란 불교와 승려들의 방향성은 어떤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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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승려 지눌이 1190년(고려 명종 20) 지은 《권수정혜결사문》의 중간본(重刊本)으로, 1608년(선조 41) 순천 송광사에서 간행되었다. 《권수정혜결사문》은 승려들에게 정혜쌍수, 즉 선정(禪定; 참선으로 내면을 닦아 삼매경에 이름)과 지혜(智慧)를 함께 닦을 것을 호소하기 위하여 지은 책으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와 수행법 등을 문답 형식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현재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1608년과 1635년(인조 13), 1860년(철종 11) 등에 발간된 중간본들이 현존한다.

    경상남도 하동군 청계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중간본은 목판본으로서 반곽(半郭; 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 크기가 가로 13.4cm, 세로 19cm에 이르며 행자수는 9행 17자이다. 지질은 닥종이이고, 표지는 붉은 색으로 염색되어 있다. 표제는 ‘結社文(결사문)’, 권수제(卷首題; 본문 머리에 쓴 제목)는 ‘勸修定慧結社文(권수정혜결사문)’으로 되어 있다. 권수제 하단에 ‘雪醐(설호)’라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으며, 본문 하단에는 최언량(崔彦兩), 도신(道信), 조손(曺孫), 의현(義玄) 등 책의 간행에 도움을 준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책의 끄트머리에는 ‘大明萬曆三六年戊申六月日順天府松廣寺重刊(대명 만력 삼육년 무신 유월일 순천부 송광사 중간)’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하여 만력(명나라 연호) 36년인 1608년 무신년 6월에 순천의 송광사에서 중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간행연대와 간행처가 분명히 밝혀져 있고, 인쇄·보존상태가 온전한 불교서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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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권수정혜결사문은 승려들에게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것을 호소하기 위해 지은 책으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와 수행법 등을 문답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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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권두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 있고, 다음에 여섯 차례의 문답을 통해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 이유 및 수행하는 이들이 갖기 쉬운 의문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서(序)에서는 “한 마음 미혹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가 부처”라고 정의하였고,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모든 반연(攀緣:얽힌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서 가만히 합하고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하고,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하였습니다.


    첫째는 “바른 도가 가려진 말법(末法)의 시대에는 선정과 지혜를 닦기보다는 염불로써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입니다. 지눌은 시대가 변하였더라도 심성은 변하지 않는 것임을 명시하고, 염불이나 경읽기 등이 모두 필요한 수행이지만 선정과 지혜가 모든 수행의 근본이 되며, 행하기 어렵다 하여 금생에 닦지 않으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닦기 어려워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세라는 시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망령된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라고 보고, 정법과 말법시대를 논하기보다는 제 마음의 어둡고 밝음을 걱정할 것과 분수를 따라 수행하여 바른 법과 인연을 맺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째는 “선을 닦는 사람이 신통(神通)을 나타내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지눌은 신통이란 불심을 바로 믿는 법의 힘을 따라서 더욱 수행하여 공을 쌓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얼어붙은 못이 모두 물인 줄 알지만 햇빛을 받아야 녹고, 녹아야 논밭에 물을 대거나 물건을 씻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혜와 선정에 의지하여 마음의 온갖 망상을 제거하면 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지엽적인 문제에 애착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셋째는 “참된 성품이 본래부터 원만히 이루어진 것이라면 마음에 맡겨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옛 성현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분명한데, 무엇 때문에 다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지눌은 ‘심성이 본래 깨끗하고 번뇌는 본래 빈 것’임을 믿어 알고 밖으로는 계율을 지니면서 구속이나 집착을 잊고, 안으로는 선정을 닦으면서 애써 누르지 않게 될 수만 있다면 마음에 맡겨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도를 닦는 사람들이 깊은 신심이 없어서 수행하지 않고 방치하면 더욱 타락하게 되므로,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할 뿐 아니라, 마음을 거두어잡아 안으로 비추어보되 먼저 고요함[寂寂]으로써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리고, 다음에는 또랑또랑함[惺惺]으로써 혼침한 정신을 다스려 혼침과 산란을 고루 제어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넷째는 “제 마음을 비추어 보아 불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상등의 근기(根機)가 아니면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부처는 중생들이 제 마음의 신령함과 자재함을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해서 도를 구하는 것을 염려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보인 것이라고 하고, 스스로 제 마음을 속여 믿지도 않고 닦지도 않는다면 결코 이룰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는 “교종에서 52위(位)의 수행법을 세워 오랜 세월 동안 닦아가는 것에 비추어볼 때, 선종에서 또랑또랑하고 고요함의 두 가지 법에 의해 혼침과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림으로써 부처의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이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닌가?”를 묻고 있습니다.


    지눌은 교종에서 온갖 행을 다 닦지만 그것 또한 무념(無念)을 종(宗)으로 삼고 무작(無作)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므로, 선종에서 고요함과 또랑또랑함으로써 수행하여 본성에 곧바로 계합하도록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신론 起信論≫·≪오위수증도 五位修證圖≫·≪법집별행록 法集別行錄≫ 등을 인용하여, 수행이란 결국 고요함과 또랑또랑함으로 집약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정토왕생을 위한 수행과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의 차이점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왕생을 위한 수행은 결국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므로 왕생을 구하지 않더라도 ‘다만 마음뿐’임을 밝게 알아서 지혜와 선정을 닦으면 저절로 정토에서 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고, 염불 또한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았습니다. 끝으로 지눌은 정혜결사를 하게 된 경위 등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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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승려들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 것[定慧雙修]을 호소하면서 지은 책입니다. 지눌이 1182년 정월에 개성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승려 10여 인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서 선정과 지혜를 닦자고 결의한 뒤, 1190년에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결사를 시작할 때 이 글을 지었다 합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모든 반연(얽힌 인연)을 쉬고 마음을 비워서 가만히 합하고 밖에서 도를 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데 있다고 정의하고, 수행인들이 마음을 밝히는 일보다는 자기 이익 만을 탐하고 헛되이 의식을 허비하는 현실을 개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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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은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송광사(松廣寺)에서 수선사(修禪社)를 결성할 때 그 취지를 적은 글이다.


    이 글에 의하면 지눌은 고려 명종 12년에 서울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같이 수행하던 10여인과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위한 결사(結社)를 거론하였다가 실패하였고, 동왕 18년(1188)에 다시 정혜사(定慧社)를 발기하여 2년 뒤에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이 글에서 지눌은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는 것이 어째서 불도의 요체인가를 밝혀 자기의 소신을 명백히 하였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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