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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페퍼민트23.07.20

거상 김만덕은 어떤 식으로 조선 시대에 업적을 쌓았나요?

조선시대 김만덕은 본디 기생 신분이었다가 훗날 양인으로 신분상승을 했으며 무역으로 부흥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러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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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인인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나 12살때 부모를 잃고 두 오빠는 목동이 되어 막일을 하며 외삼촌 집안에 얹혀살다가 은퇴 후 기생에게 수양딸로 맡겨져 기생 수업을 받았으며 이후 제주 관가의 기생이 되었지만 가문에 누가 된다는 친가 쪽의 강요로 그만두게 되며 다시 양인으로 돌아온 뒤 객주 일을 시작, 본토와 제주도 사이의 물자 유통에 수완을 발휘해 제주도에서 알아주는 대부호가 됩니다.

    1795년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하며 식량 생산이 저조했던 도내 농사에 큰 타격을 입었고, 본토에서 2만섬을 보내지만 가던중 침몰, 이때문에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지만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본토에서 쌀 5백섬을 사와 제주도민의 구호에 써달라고 관가에 헌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39년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열두 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녀는 기생의 몸종으로 들어간 뒤 관청에 소속된 기생이 되었으나,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는 기생의 신분을 벗고 양인이 되어 객주를 차렸다. 객주란 상인들의 물건을 대신 팔아 주거나, 상인과 상인 간의 거래를 도와 돈을 버는 상인을 뜻한다. 김만덕은 사업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녀는 객주 활동 외에도 여관과 식당, 특산물 거래 등을 해서 오래지 않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제주도에서는 극심한 흉년이 여러 해 계속되었다. 굶어 죽는 백성들이 줄을 잇자, 조선 조정에서 이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 식량을 보냈지만 운반하던 배가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 이에 김만덕은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풀어 죽어 가던 제주도 백성들을 구해 냈다. 당시 김만덕이 살린 백성의 수가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김만덕의 선행을 전해 듣고 크게 칭찬했다. 또한 “한양에서 임금님을 뵙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도 들어주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기생이었던 여자가 임금을 알현(높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제주도민들은 섬 밖 출입이 철저히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김만덕의 임금 알현은 매우 큰 상이었다. 채제공, 정약용, 김정희 등의 학자들은 김만덕의 선행을 기리는 글과 시를 많이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만덕 -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조선 후기의 큰 상인이자 여성 상인 (한국사 사전 3 - 나라와 민족·기구와 단체·역사 인물,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