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성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청렴한 관리가 있나요?
세종때 정승을 지낸 황희는 우리 모두에게 청렴한 관리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고 그렇게 청렴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느 것이 진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희는 조선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1363년(공민왕 12)에 태어나 1452년(문종 2)에 사망했다. 고려가 멸망하자 은거하다가 태조의 적극적인 출사요청에 응하여 관료가 되었다. 태종과 세종 재위기까지 관직생활을 하며 국방 강화, 예법 정비, 외교문물제도의 정비, 농업 진흥,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 진흥의 지휘감독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세종 대에 영의정부사에 오른 뒤 18년 동안 국정을 총괄하면서 세종 대의 성세를 이룩한 인물로, 조선왕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희 [黃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황희에 대한 ‘판타지’를 부술만한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간통·뇌물수수·살인범은닉·친인척 비리 등 다양한 부정부패와 얽혀있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죠. 또, 대사헌 시절엔 승려로부터 뇌물로 금을 받아 ‘황금대사헌’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세종 10년 그가 사직서를 냈을 때, 사관이 남긴 평입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도 많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부리는 자와 농막(農幕)에 흩어져 사는 자가 많았다. 정권을 잡은 여러 해 동안에 매관매직하고 형옥(刑獄)을 팔아 (뇌물을 받았으나)…그의 심술(心術)은 바르지 아니하니, 혹시 자기에게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몰래 중상하였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