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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4.10

원산노동총파업은 어떠한 파업이었나요?

과거 원산노동총파업이 일어났었다고 하는데 이는 어떠한 이유로 일어나게 된것이며, 결과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이 파업이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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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29년 1월부터 4월까지 원산지역

    3천 여명의 노동자들이 80여일 동안 파업을 했다. 원산총파업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노동운동의 물길을 가르는

    식민지 강점기의 가장 큰 파업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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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산 총파업(元山 總罷業)은 1929년 1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 원산시에서 있었던 총파업이다. 영국계 기업 문평 라이징선 제유회사의 일본인들이 있었는데 이들 일본인은 평소 조선인 노동자들을 민족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하였다. 그 중에서도 고타마(兒玉)라는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에게 욕설과 구타를 일삼았는데, 1928년 9월 초 또 다시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에 120여 명의 노동자들이 고타마의 파면과 생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일으켰다고 합니다.일본인 감독의 폭력이 발단이 되어 원산 지역 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으로 발전하였고 3개월을 넘게 지속되던 파업은 지도부가 교체되고 조선 총독부의 무력 진압하에 결국 3개월이 지나 종식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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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0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영국 석유회사 '라이징선'의 제유소에서 고타마란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을 게으르다고 구타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결과로는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동자들에게 합법적인 노동투쟁의 한계를 분명히 각인시킴으로써 이후 비합법적, 폭력적인 '적색노동투쟁'을 통한 항일운동이 전개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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