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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0.19

장미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영국의 옛날 장미의 전쟁에 대해서 들어봤는데요, 어떻게 일어난 전쟁인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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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55~1485년에 걸쳐 영국의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 사이에서 벌어졌던 왕위 쟁탈전 입니다.랭커스터 가 문장은 붉은 장미, 요크 가 문장은 흰 장미였기 때문에 왕위를 놓고 두 가문이 벌인 전쟁을 장미 전쟁이라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내란 이라고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19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미전쟁의 원인이 궁금하군요.

    이 장미 전쟁은 사건의 전개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계보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장미 전쟁의 주역인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람들은 모두 에드워드 3세의 후손들이며 에드워드 3세의 3남인 랭커스터 공작(곤트의 존)이 랭커스터 가문의 시조이고 4남 요크 공작(랭글리의 에드먼드)이 요크 가문의 시조입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헨리 6세의 발병을 틈타 1453년 호민관 겸 방위관이 되어 랭커스터가의 중심세력인 서머셋 공작과 싸워, 장미전쟁을 일으켜 그를 멸하였습니다. 1460년에 리처드는 왕위를 요구하여 헨리 6세의 사후 왕위 계승이 승인되었으나, 랭커스터파의 반대로 리처드는 전사하였습니다. 리처드의 아들 에드워드는 1461년 랭커스터가를 격파하고 왕위를 획득하여 에드워드 4세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요크가 내부에 불화가 일어나, 1483년 에드워드 4세의 사후, 에드워드 5세와 그 동생이 에드워드 4세의 적자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에드워드 4세의 동생 글로스터 공 리처드가 리처드 3세로서 즉위하였습니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2세가 왕위를 빼앗기고 후사가 없이 사망한 후 랭커스터 가문에서 헨리 4세 - 헨리 5세 - 헨리 6세가 왕위에 올랐고, 이후 이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요크 가문에서 에드워드 4세 - 에드워드 5세 - 리처드 3세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으며 마지막으로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에 속한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즉위하면서 이로써 장미 전쟁은 끝나고 튜더 왕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서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후 영국에서는 왕위 계승을 장미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랭카스터(붉은장미 문장)와 요오크(흰 장미 문장) 두 왕가를 중심으로 벌어진, 쉽게 말하면 귀족들간의 왕위 쟁탈전으로서 이로인해 대부분이 몰락하기도 하였는데 1455-1485 걸쳐 30여년간 이어진 결과, 헨리 7세(헨리 튜더)가 왕위에 오르며 그동안 많은 귀족들이 몰락하였기에 더욱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며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