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톰아저씨크루즈여행^*^입니다.
대항해시대에 접어든 16세기에 지중해 연안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은 수에즈 지협에 운하를 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해상 패권에 대응하려고 했으며, 17~18세기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독일 황제 라이프니츠는 수에즈 운하를 만들어 네덜란드나 영국의 아시아 무역을 제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토목기술의 부족으로 성사될 수가 없었고
이집트에 진출한 나폴레옹도 영국의 인도 무역에 타격을 안기기 위해 운하 개설을 위한 조사를 했으나 지중해와 홍해의 수심차가 10m나 되었기 때문에 개설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846년 프랑스의 시몬주의자(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주도로 프랑스와 영국 ·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이 참여한 이른바 ‘수에즈운하연구협회’가 결성되고 국제적 기업에 의한 운하 개설 계획이 세워졌고 영국은 자국 이익에 배치된다는 구실하에 이 계획을 반대하였습니다
1854년 이집트의 아미르(통치자, 수장)가 된 무함마드 사이드 파샤(Sa’id Pasha)는 프랑스인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에게 운하개설 특허권과 수에즈 지협 조차권(租借權)을 양도했으며, 1856년 이집트의 종주국인 오스만 투르크도 이를 승인하였고 레셉스는 2억 프랑(800만 파운드)의 자본금으로 1858년에 ‘만국수에즈해양운하회사’(Compagnie Universelle du Canal Maritime de Suez)를 이집트 법인으로 설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