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무엇에 대한 책인가요?
조선시대에 썻던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서 다른 책인가요? 그리고 그 당시 지방관청의 백성들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행정학이나 공무원의 윤리 지침의 기반을 저술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책이다. 제목의 뜻은 목민할 마음만 가졌지 몸소 시행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라고 다산 본인이 밝혔다. 혹은 목민관이 가져야 할 마음(牧民心),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에 관한 책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내용적으로는 수령, 관리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즉 관리, 윗사람으로서의 솔선수범, 청렴함 등을 강변하고 있는데, 사실 실질적인 행정 업무 설명서적인 성격도 강하다. 또 관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현대시대에서 시민으로서, 그리고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로 의미를 확장해서 읽으면 굉장히 유익한 내용이 많다.(부정한 상사(上司)에게 굴해서는 안 된다는 말 등) 책 자체의 평가는 매우 높다.
저자인 정약용은 1801년 순조 1년 일어난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에 휘말린다. 이 사건은 노론 벽파의 주도로 남인을 주축으로 한 정조의 친위세력인 시파(時派)를 완전히 몰락시킨 사건이다. 남인 청류당 계열 가운데 이가환, 이승훈 베드로[2], 정약종 아우구스티노[3], 이벽 세례자 요한, 권철신 암브로시오 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다. 정약용은 겨우 살아남아 16년간 귀양살이를 보내게 되며, 이런 유배 생활에서 쓰여 진 것이 바로 목민심서이다.
이런 내용과는 별도로, 정약용의 개인적인 주관 등이 들어가서 의외의 재미가 있다. 논어를 딱딱한 책으로 생각하고 처음 읽어본 사람이 공자가 제자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나 제자가 공자에게 반항하는 장면 등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과 비슷하다. 그 당시 목민관들 사이에 돌던 '업계의 속사정'이라든가, 시장터에서 골목대장 행세를 하는 자를 묘사한 장면 등 가볍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정약용 개인 취향이 보이는 부분도 있는데, 나라에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서 금주령이 내리면 설사 서울에 끈이 있는 지방의 토호라 할지라도 잡아다가 엄단할 것을 설파하던 분이, '농주는 식사대용도 되니까 그냥 넘어가라......'라고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총 분량은 부임(赴任)·율기(律己,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 典)·진황(賑荒)·해관(解官, 관원을 면직함) 12편이며, 각 편을 6조로 나누어서 총 72조로 구성한다.
목민심서는 크게 두 가지의 이본(異本)이 있다. 하나는 1817년 강진(康津)에서 이루어진 초고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초고본을 수정ㆍ가필하여 1821년에 마현(馬峴)에서 마무리한 완성본이다. 완성본에는 초고본의 조명(條名)을 다소 바꾸고 문장을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대 중국과 조선의 순리(循吏)들의 선행(善行)에 관한 사례를 대폭 증보했기 때문에, 책의 분량이 3분의 1 이상 증가하였다.
출처: 나무위키 목민심서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민심서는 수령, 관리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 서술합니다.
관리, 윗사람으로 솔선수범, 청렴함 등을 강변하며 실질적 행정업무 설명서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목민심서 서문에 따르면 당시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때문에 하민들은 여위고 병들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로 당시 상황을 서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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