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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7

백제의 의자왕은 나중에 정말 타락하게 된 게 사실인가요?

초반에는 신라와의 전쟁에서 많은 영토를 획득하는 하고 좋은 칭호도 얻었는데 역사서에는 아무런 개연적인 사건 없이 갑자기 의자왕이 후반에 타락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게 정말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패망한 나라의 역사를 승자의 입장에서 사실과 다르게 기술하여 전래되어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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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왕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기는 어렵지만, 의자왕은 유독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아왔다. 백제인의 시각에서 서술한 역사서가 전하지 않고, 백제와 적대관계였던 신라에 흡수 통합된 뒤 신라인의 시각에서 전하는 적장의 모습이기에 부정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왜곡의 정도가 유난히 심했다.

    의자왕 하면 많은 사람들이 삼천궁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의자왕의 궁녀였던 3,000명의 여성들이 사비성이 함락되자 낙화암에 몰려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마치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는 전설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당시 사비성의 인구가 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또 조선시대에도 궁녀의 수가 최대 600명 정도였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사비성에 3,000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건 믿기 어렵다. 또한 당시 기록 가운데 삼천궁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중기 시인이었던 민제인의 [백마강부]라는 시에서 ‘궁녀 수 삼천’이라는 말을 처음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문인들이 문학적 상징어로 이해해야 한다. 이후 지금까지 대중가요에 삼천궁녀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수십 곡 불리면서 의자왕은 3,000명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린 방탕한 왕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니까 삼천궁녀는 방탕했던 호색 군자라는 의자왕의 이미지를 완성시킨 후대인들의 상상력일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자왕 [義慈王] - 백제의 마지막 왕 (인물한국사, 윤희진,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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