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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슴새216
우람한슴새21623.10.31

후궁이었던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어떻게 권력을 잡게되나요?

측천무후는 당태종의 후궁이었으며 당고종의 후궁으로 다시 들어가는데요

그럼에도 나중에 황후에서 향후 여황제로 실세를 잡게되는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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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3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측천무후가 황제가 된 것에는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690년 국호를 '주'로 고친 후 15년간 황제로서 중국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무씨는 자신의 셋째 아들 이현을 새로이 황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형들과 달리 유약하였고, 어머니의 말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3년 뒤인, 683년 고종 이치는 사망하였고, 황태자 이현이 황제에 오르니 이가 중종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무씨는 그를 폐위시켰습니다. 이유는 바로 이현의 처인 황후 위씨와 그 아버지 위현정이 정사를 농단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현을 여릉왕으로 강등시키고, 자신의 소생 중 막내아들인 이단을 황제에 올리니 이가 바로 예종입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모든 정사를 직접 관장하였습니다. 무씨는 낙양을 신도라 고치고, 관제도 새로이 개편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대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684년 9월, 양주의 서경업이 먼저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군하였는데, 그 격문을 낙빈왕이 썼습니다.

    무씨는 그 격문을 보고 낙빈왕이 자신의 수하에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어쨌든 그녀는 30만의 진압군을 파견하여 40일 만에 그 모든 반란이 평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씨는 이 반란에 동조하였던 모든 대신들을 처형시키고, 내각을 새로이 개편하였습니다.

    무씨는 하늘의 뜻을 거론하며, 여론을 조작하기도 했는데, 그녀의 조카 무승사(649~698)가 '성모임인 영창제업' 즉, 황태후께서 군림하시니, 황제의 기운이 대대손손 번창하리라는 쓰여진 돌을 가져와 무씨에게 바쳤고, 이것을 본 무씨는 기뻐하여 연호를 '영창'으로 고쳤다. 한편, 당 고조 이연의 11남인 한왕 이원가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할 뻔했으나, 무씨는 군사를 보내 이를 진압함으로써 자기의 황제 즉위에 걸림돌(장애물)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