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군사적 충돌은 있었습니다. 다만 대규모 본진의 전투시에 태풍으로 연합군이 피해를 봅니다. 동로군은 음력 6월 6일에 독자적으로 하카타만을 공격했으나, 1차 때와 달리 방어체제를 보강한 일본의 저항에 부딪혀 내륙으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이키섬으로 돌아가 강남군의 도착을 기다리다가 7월 2일 본토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음력 7월 27일, 동로군은 강남군과 합류해 다카섬에 상륙해서 하카타만을 공격하려 했는데 그런데 예상과 달리 30일, 다카섬 근해에 태풍이 불어 닥쳤고 놀랍다 못해, 일본인들은 ‘가미가제(神風)’와 ‘기적’이라는 수사를 붙였지만, 자연은 두 번 씩이나 일본을 도운 것이다. 좁은 만 안에 정박시켜 놓은 연합군의 4000척 배들은 충돌하고 침수하면서 속수무책으로 침몰, 표류했다고 합니다. 무려 2000여 척이 침몰하는 등 아비규환이었다고 합니다. 강남군은 전선 3500척과 군사 10만여 명으로 참전했다가 때마침 태풍을 만나 모두 익사했으며 시체가 포구로 흘러 들어가 막혔다고 기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