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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23.07.16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땨문인가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적중륜이 그다지 신통치 않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절반도 적중이 안된것으로 알고있는데 이 낮은 확률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이 아직까지도 유명한것은 어떤 이유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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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52세 때인 1555년에는 예언서인 [백시선]의 초판본(1-3부)을 간행했습니다.

    이때부터 노스트라다무스는 점성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1556년 여름에 파리를 방문하여 당시의 국왕 앙리 2세와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 부부를 알현했습니다. 살롱으로 돌아온 노스트라다무스는 [백시선]의 집필을 계속했는데, 1559년에 앙리 2세가 마상시합에서 부상을 입고 뜻하지 않게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급기야 이 사건이 그의 예언서에 나온 4행시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노스트라다무스의 탁월한 예언 능력에 대한 명성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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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앙리 2세의 마상 창 시합도중의 사고사, 앙리2세와 카트린 사이에서 얻은 아들들이 모두 프랑스 왕이 되지만 요절한다는 예언이 맞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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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노스트라다무스는 절반도 적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선택 편향과 확증 편향이 있습니다. 부정확하거나 불분명한 예언들은 간과되고 실제 사건과 우연히 일치했던 예언들만 인상적으로 남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예언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미디어들은 적중한 예언들을 주로 보도하기 마련이므로 대중 입장에선 노스트라다무스가 엄청난 예언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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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의 신탁이나 종교적 예언이 성행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16세기와 17세기는 미래를 아는 체하는 사기꾼들의 전성기였다.” 집단적 광기와 현혹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 책 [대중의 광기와 미망](1841)의 저자 찰스 맥케이는 이렇게 지적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 고대의 예언 못지않게 애매하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너무나 긴 영역을 다루므로, 수백 년이 지나면 <거기 해당할 만한 사례가> 실현될 수밖에 없으며, 조금만 생각하면 <실제로> 일어난 일에 꿰어 맞출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1) 최근의 재난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4행시를 찾아낸다. (2) 유사한 내용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다른 내용은 최대한 뭉뚱그린다. (3) 결국 예언이 빗나갔음이 드러나면, 해석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을 뿐이라고 둘러댄다. 이런 식이라면 차후로도 노스트라다무스가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을 예언했다는 사실이 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발견”은 십중팔구 사건의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걸 정말로 “예언”(미리 말함)이라 불러야 할까?

    노스트라다무스는 정말 미래를 내다본 예언자였을까?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단언할 확증도 없긴 마찬가지다. 다만 “성취된 예언”으로 간주된 것들은 모두 “사후약방문”과 “견강부회”에 불과했고, 심지어 1999년 7월의 경우처럼 모든 해석자가 확실하다고 장담했던 예언마저 빗나가고 말았다. 이쯤 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사실상 가치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예언이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해도, 최소한 예언의 진위를 판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언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하나같이 상업적인 맥락에 놓여 있음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하지 못한 한 가지 사실은, 자신이 20세기에 1인 산업이 되리라는 것이었다.”(로버트 T. 캐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일본의 노스트라다무스 해설가 고토 벤의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번역되면서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세기말을 앞둔 불안감에 편승한 반짝 상품이거나, 또는 특정 종교 단체의 종말론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지난 수백 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대중적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강력한 호기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앞날이 불투명하고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그의 예언은 비록 미래를 이야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해주는 셈이다.

    출처 : 인물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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