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노비가 적어도 전체 인구의 40∼50%를 넘었음이 분명한데 이는 조선 전기 농업노동의 상당 부분이 노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의미 합니다. 하지만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부유한 노비들이 늘어 가면서 노비들이 양반첩을 사기도 하고 도망도 가면서 노비의 숫자는 많이 줄어 듭니다.
원시공동체가 해체되고 초기 국가가 성립되면서 정치권력의 형성과 함께 금속제 농기구에 의한 생산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간의 정복전쟁이 이뤄지고 반복된 정복전쟁으로 포로와 점령지 주민들은 노비로 전락하였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 7% 중인 20% 평민 45% 노비28%정도였다가 조선 후기에는 중인과 평민들이 공명첩 등으로 양반이 되어 70%와 노비 30%의 구성을 보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