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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별달해
푸른하늘별달해23.05.24

영국이 수도는 런던입니다.이 도시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시겠습니까?

런던은 근대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역사가 영국을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원동력을 만들어나요? 그리고 블렉시트 안을 통과시켰을까요? 간단하게 설명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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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흔 사람들이 산업 혁명이 공장이나 기계로만 생각 하는데 사실 산업 혁명의 시발점은 2차 농업 혁명에서 시작 한 것 입니다. 영국은 농부들 역시 이하의 인클로저운동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적 이념이 발달해 있어서 자신들 소유의 경작지의 생산성과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적 육종을 합니다. 영국은 18세기에 이미 농업 경진대회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전국 각지의 농업인들이 경쟁적으로 우량 품종을 내놓았는데, 그 경쟁의 결과로 1700년에 평균 무게 170kg 이던 식육용 황소가 1786년에는 386kg으로 증가했고 유명 품종 가축 중 상당수가 이때 나온 것 입니다. 영국이 가진 막대한 해외 시장 덕에 해외에서 다양한 품종의 가축을 수입해올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형질을 들여와 실험할 수 있었던 것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즉 영국의 산업 혁명은 해외 식민지 사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농업 혁명을 기관으로 점차 증기기관이나 공장가동등으로 런던에 많은 인구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고 런던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발달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 하원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 법안을 2020년 1월9일 통과시켰습니다.하원은 이날 찬성 330대 반대 231로 유럽연합 탈퇴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기(A.D.) 43년 론디니움(Londinium)은 로마의 침공으로 로마인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항구와 무역 정착지를 건설하고 상업을 촉진시켰지만 이후 켈트 이케니(Celt Iceni) 부족의 부디카 여왕(Queen Boudica)의 칩입으로 서기 61년 도시를 잃게 되었다. 로마인들의 점령 당시 런던 지역은 항구와 무역의 영향으로 인구가 50,000명까지 증가하였다. 이후 도시는 성 마틴 인 더 필즈(St Martin-in-the-Fields) 지역에서 재건되었지만 서기 476년 이후 로마가 급격히 쇠락하면서 도시는 바이킹과 다른 부족들의 칩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066년 윌리엄 1세가 헤이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승리하면서 영국 왕이 되었고 1087년 윌리엄 2세가 즉위하면서 12세기 이후에는 중앙집권이 안정화되었다. 이후 왕과 중앙정부가 위치한 웨스트민스터시(Westminster)와 런던은 번영을 누렸다. 1475년 한자동맹 이후 런던이 영국의 무역기지(Kontor)가 되었고 1853년까지 역할을 지속하였다. 이탈리아의 상인은 정기적으로 무역을 하러 찾아왔고, 한자동맹 소속의 상인들은 교역근거지를 설치하는 등 런던은 국제상업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이탈리아 금융업자도 런던에 정주하여 은행을 경영하였는데, 이것이 롬바드가(街)의 시초가 되었다. 13세기 중엽 런던은 국왕에 의하여 국산 양모무역도시로 지정되었고, 15세기 초에는 모험상인회사(冒險商人會社)가 특허되었다. 각종 상인 길드도 형성되어 마침내 영국중상주의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더욱이 산업혁명은 잉글랜드의 중·북부를 무대로 했기 때문에, 런던에는 새로운 공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내산업을 위한 원료수입·제품수출 무역과 중계무역 기지로서의 국제적 중요성은 더욱 더 높아졌다. 1851년 하이드 공원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는 관람자 600만 명을 기록하였다.

    17세기 중반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인해 런던의 20%가 넘는 인구가 사망했으며,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인해 도시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화재 후 화재보험이 창시되었고, 목조건축은 금지되어 근대 런던의 기초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왕립거래소가 설립되고 상업주의가 발전하면서 런던은 주요 항구 거점으로 성장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해외 이주민들이 런던으로 유입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런던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대도시들은 급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뤘고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20세기 초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발생한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피해로 영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런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국은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을 위해 노력했으며 1940년대 이후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자메이카 등 영연방 국가 및 과거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로부터 대규모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런던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였다. 1950년 이후 런던은 경제 부흥과 지역 개발을 위한 도시개조계획을 추진했고, 지속적인 투자와 경제성장을 통해 글로벌 도시로 다시 도약하였다. 21세기 들어 런던은 2004년 런던 도시계획(London Plan)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런던의 역사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