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에 있어 서희의 외교담판은 어떤 사실 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우리나라는 가운데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던데요~
이 상황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서희의 외교담판이었는데,
서희의 외교담판이 어떤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희는 거란군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고, 외교담판을 통해 위기를 넘겼습니다. 서희는 거란과의 논쟁에서 고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거란의 침략을 비난했습니다. 뛰어난 설득력으로 거란의 요구를 거절하고 결국 고려와 거란의 국경을 압록강으로 확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희의 외교담판은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협상을 통해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인정받고, 송나라와의 교류를 끊는 대신 거란과의 교류를 약속받은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고려는 영토를 압록강 유역의 강동6주까지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고려의 외교적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또, 서희의 외교담판은 양국 간의 상호 존중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인문·예술 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서희의 외교담판은 거란의 1차 침입 때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군사력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닌 소손녕과의 외교로 사실상 고려가 이익을 본 사례로(* 강동 6주를 얻어냄. ) 이런 외교적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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