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담배는 과거 어떤 사람들에겐 신(神)과 같았다.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 일부 기독교인들에겐 ‘악마’로 여겨졌다. 오늘날 대세는 ‘담배 악마론’이다. 미국의 전 공중위생국장관 에버렛 쿠프는 89년 “담배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은 곧 질병과 불구와 죽음을 수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환경사회학자 토다 키요시는 담배를 ‘구조적 폭력’으로 간주하면서 담배회사를 ‘죽음의 상인’이라 부르고, 담배의 생산·판매·소비를 테러에 비유했다.
담배라고 하는 ‘구조적 폭력’이 전 인류에게 확산된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 남아메리카 중앙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담배가 유럽에 전파된 것은 1558년,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광해군 시절(1608~1623)인 1616년이었다. 담배는 조선에 들어온 지 5년 만에 대중적으로 확산돼 기름진 토지마다 이익이 높은 담배를 심는 폐단이 생겨날 정도였다.
지금 들으면 기가 막힐 속설들이 담배의 인기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서양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조선에서 담배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물론 충치 예방에까지 쓰였다. 조선 후기 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을 보면 당시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돼 필수품으로 대접받았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엔 “병든 사람이 그 연기를 마시면 능히 가래를 제거한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개화기에도 담배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가 한반도에 최초로 들어온 게 언제냐는 걸 놓고 설이 분분한데, 1897년부터 1903년 사이에 ‘영미연초회사’가 담배 판촉을 위해 구리개(현 충무로) 부근의 자사 창고에서 활동사진을 보여 주면서 입장료로 빈 담뱃갑을 받았으며, 처음에는 한 개를 받다가 나중에 인기가 오르니까 열 개까지 받았다는 설이 있다.
출처 : 세계문화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