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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6.27

한국의 역사 중 왜 삼국시대라고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역사 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던 삼국시대가 있잖아요.

근데 당시 지도를 보면 가야도 있는데 왜 가야는 안껴주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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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가야의 경우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했기 때문에 사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라 칭하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는 삼국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신라에 흡수된 이후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신라는 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파괴하거나 자신들의 것으로 전용하고 가야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은폐했기 때문에 가야는 삼국시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당시의 지도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고학 분야의 경우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까지를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라고 한다.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데, 철기가 보급되어 널리 사용된 4세기 이후의 삼국시대와 구분해서 별도의 시대를 설정한 것이다.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의 고구려와 부여, 옥저와 동예, 그리고 삼한의 여러 나라가 원삼국시대에 해당한다.


    고고학 연구만 아니라 문헌 사료를 통해 보아도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는 삼국시대라고 말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비록 『삼국사기』에서는 삼국의 시조(始祖)가 왕조를 개창하며 곧 급격히 영역을 확장하였고 국가의 제반 제도를 갖추어간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이는 후대의 윤색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한서(後漢書)주2』와 『삼국지』를 비롯해 동시기 중국 측의 역사서를 보면 3세기까지 삼국은 주변의 여러 나라를 압도하지 못하였다. 백제와 신라의 경우 아직 삼한의 여러 작은 나라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3세기까지 삼국이 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고고학과 역사학 방면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삼국은 4세기 이후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삼국시대라고 하면 대체로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다수와 다른 이해와 설명 역시 상당하였다.


    일부 학자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그대로 믿어 삼국의 국초부터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다고 보는데, 이 경우 삼국시대의 범위는 국초를 포괄한다. 또한, 일부 학자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비판적으로 보지만, 삼국의 고대 국가 형성에 주목하고 삼국시대를 전기와 후기 등으로 구분함으로써 보다 이른 시기부터 삼국시대의 범위 속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현재 삼국시대란 용어는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달리 사용되고 있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다수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한편 가야의 역사에 주목해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四國時代)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적어도 4~6세기 가야는 삼국에 못지않은 고대의 주요 국가 중 하나였으므로, 그를 포함해 사국시대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의 중국 정사에서 삼국이 중시되었고, 특히 『구당서(舊唐書)주3』를 비롯한 이후 중국 측의 역사서에서 삼국이 하나의 지역적 · 역사적 단위로 묶여졌으며, 전통시대 역사 인식에서 삼국이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삼국시대란 용어가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가 다른 세 나라처럼 왕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모여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있던 삼국시대를 삼국시대라 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