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는 중중의 7남인 덕흥대원군의 3남이었습니다. 중종의 차남인 명종과 조카 사이이죠. 만약 명종이 아들이 있었다면 왕이 될 수 없는 존재없습니다. 따라서 선조는 적자가 필요했어요. 게다가 선조는 광해군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궁 가운데 왕비로 간택해도 되지만 이 또한 여러 갈등 유발의 소지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즉 새롭게 왕비를 간택해서 대군을 낳으면 모든게 해결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51살의 나이임에도 19살의 가임 적기의 인목대비를 계비를 들이고 곧바로 영창대군을 낳게됩니다.
그리고 어린 왕이 즉위하더라도 수렴청정할 대비가 존재하기 때문에 왕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