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경제상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질문이 좀 많네요.ㅠ
1. 조선시대의 경제 구조의 특징과 한계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나요?
2. 조선시대 경제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계층이 누구였나요?
3. 또한 어떤 산업이 발전하였고 이 산업에서 어떠한 제품이 생산되었나요?
4. 마지막으로 경제 구조의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 조선시대의 경제 구조의 특징은 농업을 중시했고 상업을 천시한것이 특징입니다. 그나마 발전하던 상업도 금난전권으로 일부 상인들에게 만 특권을 주고 경제를 부양하지 않았습니다.
2.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계층은 당연히 사대부라고 하는 양반일 것입니다. 그들은 군역도 지지 않았고 세금도 거의 내지 않았습니다.
3. 지역 특산물을 재배해서 중국과 교역하였습니다. 홍삼이라든지, 일본에는 쌀 등을 수출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모든것을 통제하는
공무역 개념이 컸습니다.
4. 그당시 일본처럼 서양과 교역을 했어야 했고 공무역이 아니라 사무역을 허락하여 자유로운 교역을 통하여 경제를 개발 시켰어야 했는데
장사를 천시하고 서학을 금하는 모습 등이 조선의 한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성리학 즉 주자의 힘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경제 구조는 농업(農業)을 국가적으로 중요시한 농업 경제 였고 국가에서는 농사 기술을 널리 보급하였으며 또한 농업 관련 서적도 인쇄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이전의 시기에는 벼에 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이 행해지고 있었으나 점차 수리시설의 정비 등으로 모내기법이 확대되어 오늘날 벼를 심을 때는 모내기법으로 바뀌었지요. 그러면서 중 후기로 가면서 상업이 발달 하였는데 상설시장은 대도시에서만 성립할 수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의 시전이었습니다. 시전은 20만 서울 인구의 일상에 필요한 재화를 공급하였지만 다른 중요한 기능은 왕실과 국가가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궁궐 수리와 과거장 설치 등과 같은 각종 국역을 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반대급부로 서울 도성에서 10리까지 시전이 취급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권한인 ‘금난전권’(禁難廛權)이 부여되었다고 합니다. 금난전권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부터였는데, 시전이 아닌 상인들의 ‘난전’이 시전의 영업을 위협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부를 모으는 상인들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요. 조선의 인삼, 담배 등이 중국에도 수출이 되었고 중국에서는 금, 은, 향신료 등이 수입 되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런 조선 경제에는 한계가 존재 했는데 시장의 발달과 서비스의 전문화를 뒷받침할 만큼 거래량이 충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상인의 정치 참여가 봉쇄되어 권력의 침해로부터 재산권을 지키기 어려웠다는 점 외에도 국제무역의 규모가 작았다는 것이 문제 였지요. 무역의존도(무역/국내총생산)가 매우 낮아 개항 직전에 1.5% 수준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16세기까지 일본에 면직물과 인삼을 수출하여 얻은 은으로 중국의 비단이나 명주실을 수입하는 무역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17세기부터 일본에서 면직물을 자체 생산하게 됨에 따라서 면직물 수출이 중단되고 중국산 비단과 명주실을 수입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중계무역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하구요. 1687년에 중국과 일본에 국교가 수립되어 18세기 초부터 중국 상인이 직접 나가사키에 가서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자 한반도를 경유하는 중계 무역이 급감하였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2번 질문까지만 답변드리겠습니다. 너무 많아요~^^
조선시대의 경제 구조는 성리학적인 사회 질서에서 출발하여 고도의 집단생산 기반 위에서 농업, 장인 및 기업의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영농지(수조)는 전대후기에 지방관들에게 할당되는 일이 흔히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소작농들이 거의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 농가들은 고유의 경작기법을 사용하면서 일시적인 생산력 증대를 추구하던 대부분의 지방관들과는 대조적으로 지속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경제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계층은 양반 계층이었습니다. 양반들은 토지소유권과 고도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교생활 및 문화 예술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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