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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0

아리랑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아리랑이라는 노래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리랑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아리랑의 그 유래가 알고 싶어요. 아리랑은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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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령 왕비를 뜻하는 ‘알영비’나

    밀양 지역의 전설 속 인물인 ‘아랑’에서 왔다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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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한낙타174
    순수한낙타17423.06.20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어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령 왕비를 뜻하는 ‘알영비’나 밀양 지역의 전설 속 인물인 ‘아랑’에서 왔다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아리랑 자체는 의미 없는 후렴구로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 나가는 구실을 해요. 자세히 살펴보면 ‘아리랑’의 여음은 노래의 머리에서 앞소리로 쓰이기도 하고, 노래의 꼬리에서 뒷소리로 쓰이기도 해요. 또 앞사람의 노랫말이 끝난 뒤,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이어 다른 노랫말로 넘겨받는 넘김 소리로도 쓰여요.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리랑의 특성 때문에 혼자 부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를 수도 있어요.

    [네이버 지식백과] 아리랑은 무슨 뜻일까? (EBS 어린이 지식e, EBS 지식채널ⓔ 제작팀, 서선정, 민재회, 김잔디,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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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선과 진도 그리고 밀양 등 3대 아리랑을 전통민요 아리랑으로 잡을 경우 그 가운데서도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의 밀착성이 짙어, 주어진 지역 민요의 음악적 문법의 기층성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정선아리랑」이 민요적 지역성과 전통성을 으뜸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정선아리랑」은 짙은 민요적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정선의 현지 주민들에게서 그 기원이 고려 말에까지 소급될 것으로 믿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리랑의 정통을 이은 계승자로서의 긍지를 실감할 수가 있다. 그들은 아리랑의 남상이 그들의 생활공간인 태백산맥의 중허리일 것으로 믿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지닌 민요적 원형성과 그리고 현지 주민의 믿음 및 그 전승태도 등을 묶어서 생각할 때 아리랑을 산간의 ‘흙의 노래’로서 비교적 쉽게 규정지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흙의 노래’는 ①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토착성이 강할 것, ② 지역적인 일상생활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 ③ 민간 전승다운 전통성을 지니고 있을 것, ④ 주어진 지역사람들의 보편성이 큰 노래 또는 소리일 것 등, 네 가지 속성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네 속성을 통틀어서 단일한 명제를 엮어낸다면, 오래 전부터 전하여진 것으로 믿고 지역주민 대다수가 그들의 지역 내 일상생활을 실어서 노래하고 있는 소리가 곧 ‘흙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은 그 기층구조가 메나리나 정자소리와 마찬가지로 밭과 논, 그리고 물이며 산에서 부른 ‘일노래’라는 성격을 갖추고 있다. 이 경우 산과 들을 통틀어서 흙이라는 말로 포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흙의 소리인 아리랑은 산과 들 · 밭에서 부르는, 혹은 집안에서 부르는 ‘놀이노래’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은 애원성 · 탄성(嘆聲) 등이 실린 개인적인 소리라는 속성을 강하게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소박한 주관적인 서정이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이 지녔던 시정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세타령과 팔자한탄 등이 우세한 넋두리나 푸념에 견줌직한 소리였다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개인생활 주변 일상성의 묘사를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이 갖추었을 또 다른 속성으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의 기원설과 전설들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와 관련된 아리랑에서 말하여 주고 있다. 『매천야록(梅泉野錄)』에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고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 · 고종 때 당시 서울에도 이미 아리랑이 전해져 있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경복궁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과 이 공사 경비조달을 위한 가렴주구주1가 아리랑에 얽혀서 전해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대한제국 말기의 가혹한 정치와 사회현상을 타고 아리랑은 ‘흙의 소리’에서 ‘역사와 사회의 소리’로 탈바꿈해 나갈 결정적 단서 내지 동기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원군 시대를 계기로 해서 비로소 아리랑이 역사성 · 사회성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의 기원을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고 있는 아리랑의 기원설 내지 전설이, 이미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을 역사 · 사회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흙다움과 역사 · 사회다움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중의 우세를 지적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역사 · 사회성이 대원군 시대와 같이 역사적 충격을 받아 상대적으로 흙다움보다 훨씬 목소리를 높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리랑이 사회화하고 역사화하는 제2의 충격은 일제의 침략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나운규(羅雲奎)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었다고 더불어 가정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아리랑의 사회화와 역사화는 8 · 15광복과 6 · 25전쟁을 거치면서 중첩되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리랑의 자체 변화는 민간전승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한 결과라고만 설명될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으로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의 테두리를 떠나 다른 문화영역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농어촌 전통사회의 민간전승에서 좁게는 도시 민간전승, 넓게는 사회 민간전승으로 탈바꿈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다른 민간전승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이 경우, 사회 민간전승이란 동시대의 한국사회 전체가 공유한 민간전승임을 뜻한다. 그런 한편, 아리랑은 그 사회화와 역사화를 통하여 대중문화 · 상업소비문화,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문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간 것이다. 이 같이 ‘흙의 소리’ 아리랑이 역사화 · 사회화해 간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이른바 제3세계들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족주의적 문화운동으로서 일어난 민요운동과 동궤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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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의 어원은 불분명하나,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어요.



    일부 시각에서는 아리랑을 '아리다'에 연관짓기도 한다.


    아리다의 원래 어형은 '알히다[5]'이며 이는 '앓다'에 '-이-'가 붙어 형용사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아라리가 났네'는 '앓이가 나다'로 풀이되며 '앓이'는 '앓다'의 명사형이다.



    '앓앓이'는 강조를 위해 어간을 중복해서 사용했거나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아리리'와 같이 '앓이앓이'가 줄어든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가슴앓이, 속앓이' 등의 형태로 남아있으며 '나다'는 '병이 나다'에서 '나다'에 대응한다.



    또한 '아리랑'은 '구부렁(구부르다)', '달랑달랑(달다)'과 같이 동사 어간에 접미사를 붙여 의태어를 만든 것일 수 있다. 같


    은 방식으로 쓰리랑은 쓰리다와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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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의 역사와 어원은 기원설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을 만큼 내용이

    다양합니다. 그 유래 중에서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꼽으면,

    첫째로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아리랑설(我離娘說),

    둘째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아이농설(我耳聾說),

    셋째로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마지막으로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알영설(閼英說)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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