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를 언제부터 시작된건가요?
일상생활에서 일기예보는 무척이나 효율적으로
사용됩니다. 물론 틀린경우도 많지만...
그렇다면 일기예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되며,
어느나라의 일기예보가 정확한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훈 과학전문가입니다.
1851년 여름 영국의 런던에서는 대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위르뱅 르 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 1811~1877)는 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 런던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박람회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던 르 베리에는 〈데일리 뉴스〉라는 신문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신문사의 벽에는 커다란 영국 지도가 붙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에는 가로 곡선이 몇 줄 그어져 있었으며, ‘영국의 천기도’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거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그는 며칠 후, 신문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르 베리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글레이셔라는 과학자를 만나 천기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글레이셔는 2년 전부터 각 지방의 천기 상태나 기압·기온 등을 모아서 천기도를 그려 신문에 싣고 있었다.
글레이셔의 설명을 들은 르 베리에는 귀국 후 프랑스 정부에 천기예보소의 필요성을 말하고, 설치를 부탁했다.
“일기를 미리 알 수 있다면 프랑스의 산업 발달에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이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였고, 프랑스 정부는 영국과 함께 터키를 도와 러시아와 싸우게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 해군은 세바스토폴 항구 밖에 배를 멈추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 저물어 포격을 멈추고 싸움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는데 밤부터 세찬 바람이 불더니 다음 날부터는 태풍으로 변했다.
세바스토폴 항구의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의 거대한 군함 앙리호는 결국 뒤집혀서 침몰하고 말았다.
이에 놀란 프랑스 해군장관이 파리천문대의 르 베리에를 급히 찾았다.
“르 베리에 씨, 군함이 침몰되었소. 태풍이 일어난 경위와 원인을 조사해 주시오.”
르 베리에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국·이탈리아·스페인 및 유럽 각국의 천문 기상학자들을 통해 알아낸 250개 지방의 기상상태를 급히 그렸다.
그리고는 태풍의 경위와 진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천기도를 가지고 해군장관에게 갔다.
“보십시오. 그 태풍은 유럽의 서해에서 이곳을 지나 흑해로 갔습니다.
이 천기도를 보면 태풍이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지도 알 수 있겠지요?”
설명을 듣고 난 해군장관은 천기도의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하도록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르 베리에는 마침내 프랑스에 최초로 기상국을 설립하였고, 매일 매일의 기상도를 작성하여 일기예보를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일기예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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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표>라는 문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정의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50% 확률로 비가 온다고 예보를 발표하였을 때,
이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몇 %일까요?
100%입니다.
이유는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오더라도 위의 예보는 모두 맞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일기예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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