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민씨 정권의 친청정책은 당시 옳았던건지 궁금합니다.
민씨 정권의 친청정책이 당시에 옳았던 건지 궁금합니다.
꼭 친청정책을 펼칠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그 방법 뿐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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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의 정비인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의 섭정을 견제하기 위해 최익현 등과 손잡고 고종의 친정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명성황후는 자신의 동생들을 통해 세도정치를 부활시키는 등 대원군을 견제하였습니다. 그러나 1882년군신식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던 구식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청나라를 끌어들여 난을 평정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러시아를 끌어들였습니다. 개항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개화파들의 요구로 개화코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계획에 따라 일본 병사와 낭인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사후에 대한제국의 왕비로 추서되면서 명성황후가 되었습니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흥선 대원군의 섭정에서 고종의 친정체제로 전환시킨 점은 있으나 대원군이 개혁정책으로 없앤 세도정치를 명성황후가 동생들을 통해 시행했다는 점에서 개혁에서 후퇴했다고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