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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4.03.10

3.1 운동 때 민족의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은 누구 인가요?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왜 그들이 민족의 대표가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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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명은 개신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인사 2명입니다.

    개신교 인사는 이승훈, 신석구, 이명룡, 이갑성, 박희도, 이필주, 박동완, 양전백, 최성모, 신홍식, 오화영, 김창준,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길선주입니다. 그리고 천도교 인사는 손병희, 오세창, 나용환, 박준승, 권동진, 나인협, 양한묵, 이종일, 김완규, 홍기조, 이종훈, 최린, 홍병기, 임예환, 권병덕이고, 불교 인사는 한용운, 백용성입니다.

    종교인이 민족 대표가 된 이유는 일제 지배로 정치, 사회, 경제 분야 인사들이 친일로 변절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종교계 인사들만이 민족 지도자만이 조직을 유지하고,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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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서명한33인 가운데는 기독교인이 16명이며, 함께 재판을 받은 48명 가운데는 22명이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사회,경제 분야가 친일로 변질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민족 지도자로서 종교계를 중심으로 3.1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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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9년 2월 초 독립선언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 위해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이 손병희를 만나 만나 상의한 데 이어, 송진우, 현상윤, 최린, 최남선 등이 독립선언 진행방법 등을 검토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구한말의 유지를 조선민족대표로 하여 그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이유서>를 각국에 보내기로 결정한 후 서명할 인사들을 찾아나서게 된 것입니다. 송진우·최남선은 구한말의 대신들을 만나 상의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해 민족대표에서 그들을 제외키로 했습니다.
    기독교 측은 이승훈, 천도교 측은 최린이 각각 교섭에 나서 많은 동지를 얻었으며, 이를 안 불교 측에서도 한용운,백용성 등이 가담, 결국 기독교 측 16명, 천도교 측 15명, 불교 측 2명으로 모두 33명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키로 하고 총대표에 손병희를 추대함으로써 민족대표 33인이 결정되었습니다.

    민족 대표 33인은 손병희(孫秉熙)·길선주(吉善宙)·이필주(李弼柱)·백용성(白龍城)·김완규(金完圭)·김병조(金秉祚)·김창준(金昌俊)·권동진(權東鎭)·권병덕(權秉悳)·나용환(羅龍煥)·나인협(羅仁協)·양전백(梁甸白)·양한묵(梁漢默)·유여대(劉如大)·이갑성(李甲成)·이명룡(李明龍)·이승훈(李昇薰)·이종훈(李鍾勳)·이종일(李鍾一)·임예환(林禮煥)·박준승(朴準承), 박희도(朴熙道)·박동완(朴東完)·신홍식(申洪植)·신석구(申錫九)·오세창(吳世昌)·오화영(吳華英)·정춘수(鄭春洙)·최성모(崔聖模)·최린(崔麟)·한용운(韓龍雲)·홍병기(洪秉箕)·홍기조(洪基兆)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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