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진평왕 말기부터 백제 무왕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덕여왕 시기에 이르러 백제 의자왕이 거세게 공격해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이 백제의 손에 떨어집니다.
특히나 대야성은 수도 서라벌을 방어하는 주요한 요충지였기에 대야성의 상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에 신라는 백제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전략을 펼쳤습니다.
신라의 김춘추는 막중한 사명을 맡아 고구려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오히려 죽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며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심지어 귀국하는 김춘추를 살해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고구려와의 동맹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김춘추는 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왜는 오래 전부터 백제와 우호관계였습니다. 역시 얻은 것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선택지는 당나라였습니다.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신라는 백제를, 당은 고구려를 취한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즉,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였고 그에 대한 답으로 당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외세를 끌어들였다고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게 나ᆞ당 연합군은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이제 신라가 당의 고구려 원정을 지원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실 신라는 고구려 정복까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았습니다. 다만 당과의 동맹 조건이었음로 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668년에 고구려가 당의 손에 멸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