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자왕은 재위 기간은 641~660년이며 무왕의 맏아들인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 불렸다고 합니다.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을 함락시켜 신라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공략에 실패한 당이 신라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가 공격 당해서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의 결사대로 분전했으나 대패하고 항복 후 왕자·대신·장병·백성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다가 며칠 뒤 사망했다고 전해 집니다. 최근 발견된 「미륵사사리봉안기명문(彌勒寺舍利奉安記銘文)」에서는 무왕 40년(639) 당시의 백제 왕후가 사택(沙宅)씨임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의자왕 초기 정변이 친정체제(親政體制)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친고구려정책(親高句麗政策)으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