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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4.02.01

부여가 고구려에 밀려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초기에 고구려의 인구는 3만호정도였고 부여는 8만호 정도로 국력차가 상당히 많이 났고 부여가 고구려를 수시로 공격하고 유리명왕때는 태자를 인질로 요구했다고하는데 이처럼 국력면에서 비교가 안되던 고구려에 부여가 밀려나게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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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는 동으로 읍루 남으로 고구려 북으로는 유목민족인 선비족 서쪽으로는 중국 한나라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여는 고구려의 힘이 강해지자 한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견제합니다. 한나라도 선비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부여와 손을 잡습니다. 한라라가 안정적일 때 부여는 사방 2천리를 가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나라에 변화가 오면서 부여에도 시련이 닥쳐옵니다. 기원후 220년 한나라가 황건적의 난으로 멸망하고 나라가 3개로 나뉘어져 삼국시대(위 촉 오)가 되었습니다. 3국을 사마씨가 통일하지만 50여년 만에 무너지고 5호 16국시대로 혼란한 상태가 됩니다. 부여는 한나라 삼국 중 위나라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와 차례로 동맹관계를 맺고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5호 16국과 북위와는 적대적이었다가 결국 북위가 통일한 시기에 고구려 문자명왕(장수왕의 아들 광개토대왕의 손자)에게 투항합니다.(494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가 망한 이유중의 하나는 부족장인 제가들의 힘이 워낙 강하여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왕은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흉년이 들면 책임을 물어 왕을 교체하거나, 죽이기 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고구려,백제, 신라가 계속 번성한 것은 왕이 귀족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여 국론을 통일하고, 국가의 힘을 하나로 모았기 때문이기에 왕권 강화를 시키지 못한 것은 부여 멸망의 가장 큰 원인 이라고 보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2.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는 최후의 일격을 모용씨 세력에게 맞긴 했으나 실제로는 그 인민과 영역 대부분을 융성하게 된 고구려에게 흡수당했고, 끝내 고구려는 부여의 옛 고토를 당연히 옛 탁리국 영역까지 모두 합쳐 영역화했습니다. 그래서 부여와 고구려의 갈등은 일단락되었고 옛 부여인들 대부분은 정체성이 고구려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