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장군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이었습니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에서 계몽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후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혁신 의회와 한족 총 연합회를 결성하였습니다. 1917년 3월에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으나 면소판정을 받고 풀려나자 만주로 건너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에서 38명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독립선어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러시아로 독립군들과 함께 이동했으나 러시아의 독립군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품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한국총연합회의 촌장으로 자력갱생을 주장하며 정미소를 직접운영하였는데 고려청년동맹 박상실의 총탄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