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씨 집안이 고려를 넘어서 원나라로부터 힘을 얻게 되자 고려 조정은 이들 기씨 집안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기씨 집안의 아들들이 원나라의 힘을 고려에 유익하게 쓰기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쪽으로 이용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기황후도 가족들을 위해 고려에 대한 내정간섭을 지나치게 했습니다.
기씨 집안의 악행은 결국 공민왕(恭愍王) 즉위 후 원나라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이들을 비밀리에 제거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때도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위하고 충선왕(忠宣王)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고려 출신인 최유(崔濡)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케 하였으나 이미 원나라의 국세가 기울고 고려가 원나라 군대를 잘 막아내서 실패로 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