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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마수리346
요리조리마수리34623.09.01

고려 시대 일어났던 묘청의 난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에 있어서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었는데요.

서경천도론과 관련해서 고려시대에 '묘청의 난'이라는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묘청의 난의 근본적인 발생원인과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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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인종 13년 묘청이 풍수지리의 이상을 표방하고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며 일으킨 반란으로 이자겸의 난 후 인종은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민생안정,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김부식 중심의 보수적 관리들과 묘청, 정지상 중심의 지방출신 개혁적 관리들 사이에 발생한 대립을 배경으로 합니다.

    정부군은 서경성 바로 밑까지 진격, 중,좌,우,전,후의 5군이 성을 포위하나 반란군은 결사적인 항전으로 고전, 반란군은 1년넘게 항전을 계속하나 식량이 부족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며 사기가 떨어지고 1136년 2월 정부군은 총공격을 강행, 서경성을 함락, 이에 조광 등 반란군의 지도자들이 자결함으로 반란이 끝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이라는 승려는 지금으로 치자면 굉장한 정치가이자 권력가였는데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묘청의 난은 고려 인종 때 승려 묘청 등의 금국정벌론과 서경 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호를 천견충의군이라 하여 대위국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입니다. 서경출신의 승려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고려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개경의 지덕이 쇠약한 때문이라고 역설하였으나 서경천도가 무산되면서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26년 이자겸의 난 때문에 고려의 왕권이 크게 하락하자 인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잡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에 묘청은 개경(고려의 수도)은 땅의 운이 다했으며 서경으로 천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인종을 설득해 서경에 대화궁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김부식, 임원애, 이지저 같은 개경파 대신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화궁에 벼락이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김부식은 이때다 하고 서경이 길한 땅이란 것이 거짓이란 걸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동의한 인종은 묘청에게 서경 천도는 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다고 판단한 묘청은 서경에서 그와 동조하는 세력인 조광, 유참 등과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 난은 쉽게 진압되고 맙니다.

    이에 대한 안좋은점 을 말하자면 묘청의 난 이후 김부식을 포함한 개경파들은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호의호식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신을 좋게 보고 무신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생겨났고요. 이것 때문에 1170년 무신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