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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파리매91
똑똑한파리매9123.02.17

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사실에 근거한 얘기인가요? 그 시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 공간이 성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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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 대 흥청이라고 흥을 돋우는 여성을 일컬었는데, 채홍사를 전국 각지에 보내 여성들을 뽑았는데 그 수가 1만이라 하였습니다. 실제 1만이라 보기는 어렵지요.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쫓겨나는데 중종과 반정세력에 의해 전정권을 과도하게 깎아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채홍사와 연산군이 연희에 빠진 것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수가 과장되었다는 것이지요.

    의자왕과 3천궁녀 이야기도 과장된 것입니다. 의자왕이 초기 총명함을 잃고 음주가무에 빠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꽤나 과장된 것이지요. 이는 승자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라가 통일의 정당성 혹은 백제멸망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백제가 멸망 시 당시 수도인 사비성의 인구는 5만명으로 그 중 궁녀가 삼천명이었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고, 현재 남아있는 백제 왕궁의 터를 보면 삼천명의 궁녀가 살기에는 좁았습니다.

    이에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삼천궁녀 얘기는 정말 삼천명에 궁녀를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옛말에 삼천이라는 말 자체가 많다라는 의미라서 그냥 조금 많은 정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렸다고 했다는 이야기는 3000 명의 궁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마만큼 나태하고

    안 좋다는 것을 흠집 내기 위한 설로 점차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계속 연구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의자왕과 후궁들이 낙화암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후궁들이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의자왕이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궁녀’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여기에 사용된 ‘궁녀’란

    표현은 넓은 의미의 궁녀(고대에는 궁에 사는 모든 여성)였다. 이처럼

    <삼국유사>에 따르면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여인들은 삼천 명이 아니라

    불과 몇 명에 불과했다.

    -출처: 문화유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