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세종 즉위 초기에 많은 수의 공녀를 명나라에 보낸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조선시대 공녀에 대한 기록은 1408년 태종 8년에 공녀를 선발했다고 기록되어있으며 13-16세의 처녀로 미모를 갖춘 양갓집 규수였다고합니다. 공녀를 받칠 수밖에 없었던건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 원나라의 공녀 요구도 있었지만 조선 초 명나라도 공녀를 요구 했는데 약간 차이가 있다면 명나라의 공녀 요구는 원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원은 고려에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공녀를 요구했다면, 명은 비밀리에 조선에 공녀를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공녀의 친족들이 공녀를 만나러 갈 때, 진공사(進貢使) 등의 이름으로 위장하여 파견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