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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비둘기23.03.09

1945년 광복이후 친일파들을 숙청하지 못한이유는 무엇인가요?

1945년 조국광복이되고 난후 가장먼저 시행한것이 친일파 숙청인데 실재로 친일파숙청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늘날까지 그여파가 있는데요

그 당시 친일파 숙청하기 좋은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숙청을 하지못하고 어영부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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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광복후 나라 전체가 아주 어지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한때 반민족특위를 구성해 친일파를 잡아서 심판을 하기도 했지만 온전히 이루어 지지 않은 이유는 어지러운 나라의 기초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등용한 인물들 중에 친일파들이 많았습니다.

    일제에 앞잡이 노릇을 한 경찰들을 다시 등용하고, 주요 관직에도 친일파 인물들을 그대로 등용하는 바람에 온전한 친일파 숙청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죠.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더 압박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곧이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파 제거 보다는 반공이 더큰 이슈가 되고, 친일파들은 반공을 더큰 이슈로 들고 나와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는데 이용했지요.


  • 광복후 대통령에 당선되어 집권한 이승만 대통령은 미소간에 냉전이 일어날것을 미리 알고 있어 통일이 요원한걸 예측하고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려 했던것 입니다. 이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살면서 세걔정세를 예측했기에 가능했던것 입니다. 그리고 북한 공산당이 언젠가는 침략할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미 미군정에서 임명한 총독부시절의 공무원들과 일본군 출신의 군부인사들을 숙청하지 않은것 입니다. 다만 그들의 장관은 모두 독립에 헌신한 분들을 초대 내각에 입각시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철저한 반일주의자이며 반공주의자 였습니다.

    다만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예측하고 일본에 예속되었던 총독부시절의 공무원과 군장교들을 그대로 유임시킨것 입니다. 이들을 모두 숙청하면 우리나라는 대혼란이 왔을것 입니다.실제로 정부수립 2년후 1950년 6월25일 북한공산군이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어떤분들은 심충적으로 생각없이 이승만이 친일파였다. 친일인사를 자기를 지지세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소설에 불과한것 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남한은 광복 이후부터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직전까지 약 3년간 미군의 지휘 아래 ‘미군정’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군정은 한국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건국을 준비하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행정에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했던 제도나 시설, 관공서, 친일 관리와 친일 경찰 등을 그대로 쓰면서 일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게 했다고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미군정을 이어받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친일파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고있었습니다

    이승만의 정치자금을 친일파가 대주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친일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고위급 관리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고, 일본과의 교류로 상당한 재력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를 제거할 수도 있었는데 불구하고 제거를 하지않은거라고보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유병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본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리인것처럼 확신하고, 자신이 겪어보지않은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어렸을때부터 반일 감정을 교육받으며 자랐기에, 일본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기본성향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해도... 이건 좀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면 갑갑해질때가 있습니다.

    친일파, 친일파 하는데... 친일파라 하면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모든 친일파가 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조선인들 못살게 굴고, 수탈하는 그런 악의축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일제시대때 창씨개명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는일을... 누군 좋아서 했겠습니까?

    좀 쓰린 이야기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조선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다 일본보다 뒤쳐지게 되었고, 예전엔 신하의 나라로 여기던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그들의 요구를 싫어도 들어줄수밖에 없게 된것이고, 그 여파로 국민들 전체가 강대국의 뜻을 억지춘향으로라도 따라야 되었던것... 그뿐인데, 창씨 개명한 사람들을 무조건 배신자처럼 생각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싸잡아 묘사하고 생각하는 행위는, 너무도 편협한 생각이 아닌가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지않나 싶습니다.

    물론, 저또한, 이런 의견이 있다는것을 이야기해보는것일뿐,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또한 백년도 못산 사람이고 배운것보다 배울것이 많은 사람인데, 제말이 진리인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진않습니다.

    그런데요.. 윤동주, 조만식, 우장춘.. 수많은 일본유학파 출신 지사분들... 이분들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조선인들 수탈한 친일파의 이미지와 겹쳐보이시나요?

    그당시엔, 조선에 고등교육을 받을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더 넓은 배움을 위해서는 일본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고, 그 일본유학.. 창씨개명 안한사람, 일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이들은 갈수가 없었죠. 굳이 이야기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형태로는 친일파라 볼 수 있단겁니다.

    그럼, 친일파들 단죄한다고들 하는데, 이런 사람들도 싸그리 다 단죄하고 숙청해야합니까?

    이런 알려진 분들이야 그래도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과 참고할 증인들이 있죠. 그런데 그렇게 알려지지않았던 사람들은... 그런사유들 하나하나 다 파악하는게 쉬울까요? 그걸 일일이 다 대조해보고 이사람은 친일인데 반한적 태도를 가진적은 없으니 숙청명단에서는 빼야한다. 이런걸 쉽게 규정할 수 있을리 만무 아니겠습니까? 그걸 해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할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까요?

    드라마같은데서 심심하면 자주 인용되는 말중에 "99인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인의 선량한 사람이 누명을 써서는 안된다" (솔직히 이말에 제가 100%동의하는건 아닙니다.) 이런 말들은 뭔가 감동 받으며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은걸로 아는데, 친일파 척결엔 왜들 그리 열을 내시는지...

    물론, 뭔가 엄청 뛰어난 AI가 있어 악질 친일파들만 칼같이 쏙쏙 골라낼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골라내어 죄를 묻는것도 좋겠다 동의합니다만, 그런게 없는 이상... 과도한 마녀사냥이 되어 국민들을 화합이 아닌 대립관계로 자꾸 몰아가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바른것인가 저는 의문을 아니가질수 없습니다.

    국가 존폐위기가 걸린 인구문제라던가, 경제문제들.. 우리나라 미래를 위협하는 산적한 일들 처리는 뒷전이고, 대체 언제까지 소모적인 과거문제에만 머물러있으려는것인지 저는 갑갑할뿐입니다.

    적폐청산요? 정치하는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해 그러는줄 아시나요? 자기들 개인적 원한 복수하는 이유가 더 크지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 선거때 정치자금 안대주고 무시했다고 세계 수출과 경쟁력 있던 잘나가던 기업을 박살 내놓은 모대통령 하며, 정치 게이트 터질때마다 진보는 반일반미감정 부추키고 , 보수는 대북위협 부추키고... 이런일들 이젠 좀 그만봤음 좋겠습니다. 그럴때마다 거기 휩쓸리는 국민들만 불쌍하죠..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남녀 갈등까지 조장시키면서 국민들 사분오열시키는 누군가들때문에, 정작 관심이 집중되어야하고 힘을 모아야할곳들은 구멍들이 터져나가고 있는데, 우린 너무 불필요한데 집중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얼마전 식당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 두분이 이승엽이 홈런 55개 때렸냐 56개 때렸냐 가지고 정말 피를 토하며 싸우더군요. 아니, 그거 맞춘다고 무슨 현자소리 듣습니까? 그거 틀린다고 무슨 집안이 망합니까? 무식한 사람이라고 무시 당한답니까? 마치 그거 틀리면 자기가 무슨 엄청난 불이익 당하는것처럼 거품물고 싸우는데... 저건 병이다..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견하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데, 그걸 큰소리쳐가며 내가 맞다고 이야기하는걸 보면서...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 현주소인가 슬퍼지더군요. (물론, 안그런분들이 더 많죠.)

    어찌 글쓸때마다 이런 장문이 되는데...

    제 의견에 이의가 있으신분도 계실거라 봅니다. 그런데, 그 이견에 저는 반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는 결론을 내는 "토론"이 아닌,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토의"일뿐이고, 누구든 자기만의 좁은 소견만 생각말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자기 사고를 넓히는 용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리 오지랖을 부린것이니, 오해는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숙청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친일파들의 공작과 계략으로 이뤄지지 못했지요. 친일파를 숙청하려는 세력을 공산주의자,빨갱이로 매도해서 오히려 전세를 역전시켜 이일로 친일파가 더 힘을 얻게됩니다. 이승만이 도와줬지요...ㅠ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군정은 한국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건국을 준비하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행정에 공백이 생기면 안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했던 제도나 시설, 관공서, 친일관리와 친일 경찰 등을 그래도 쓰면서 일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게했습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친일파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고 있어 친일파를 청산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국광복 이후 친일파 숙청 작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으나,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 국내 유권자 지지 유지

    조국광복 이후 첫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대립이 심화되어, 친일파의 선택적 숙청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1. 군사정권의 부재

    조국광복 이후 국내 권력은 미군이 점유하고 있었으며, 군사정권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친일파 숙청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1. 친일파의 법적 권리 보호

    조국광복 이후 일부 친일파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권리 보호를 강력히 추진하는 일부 보수 세력들은 친일파 숙청 작업에 역력을 가하였습니다.

    1. 수사조직 부재

    조국광복 이후 수사조직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친일파 숙청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친일파 숙청 작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친일파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 안녕하세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협조하는 친일파로 변절하였습니다.

    조국광복 이후, 친일파 숙청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제한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국내적인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하여, 정치적 분열과 관료 체제의 혼란으로 인해 숙청 작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아직까지도 일부 권력자들은 친일파를 용인하고, 일제 시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료 체제와 권력자들의 태도는 친일파 숙청 작업에 대한 정책 실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조선인들 간의 불화와 친일파의 사회적 영향력도 큰 문제였습니다. 친일파들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등을 이용하여 조선인들을 제재하거나 옹호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외적인 여건이 크게 어려웠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민족주의 운동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반발이 커져가는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전쟁의 재난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친일파 숙청 작업을 우선시하더라도, 국가적인 위기 상황으로 인해 다른 문제들에도 대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친일파 숙청 작업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일부 친일파는 권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였고, 이후에도 그 영향력이 지속되어 오늘날까지 친일파 문제가 지속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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