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미술 이미지
미술학문
미술 이미지
미술학문
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11.23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해당 바위그림은 어느 시기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있나요? 그림의 스타일, 그려진 시대의 특징, 관련된 고고학적 연구 등을 고려하여 그림의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림 속 인물, 동물, 기호 등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 부탁드립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암각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래와 거북이, 물고기 등 해양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인물상 등 총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반구대 바위그림은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2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의 내용이 궁금하군요.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 같은 바위면에 고래·개·늑대·호랑이·사슴·멧돼지·곰·토끼·여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을 표현하였다. 이곳에 표현된 동물들이 주로 사냥 대상 동물이고, 이 동물 가운데에는 교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과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하고 그로 인해 사냥거리가 많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춤추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은 인간의 생식능력이 자연의 번식력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에서는 옛날 산신제(山神祭) 때에 성기를 드러내고 춤을 추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1995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로 추정되며 ,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부터 이미 붙여져 있던 이름입니다.

    인류의 포경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류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암각화에는 고래 말고 야생동물 수렵을 포함해 의미를 알기 힘든 문양과 기호 등도 많이 그려져있으며 훼손 정도가 덜했던 발견 초기 약 300개가 넘는 그림이 확인되었는데 이후 50년동안 침수에 의한 훼손이 발생한 끝에 현재는 육안으로 식별가능한 그림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주요 내용은 고래,이며 수렵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나 호랑이, 표범, 사슴 등 육지 생물들의 모습도 보이나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해양 생물 특히 고래입니다.

    원시적 벽화임에도 고래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밀하며 종류별로 새끼를 등에 올려놓은 고래, 앞뒤의 색이 다른 고래, 수많은 세로줄 무늬가 있는 유별나게 큰 고래 등이 있으며, 고래 사냥에 대한 내용으로 미끼, 그물, 작살을 맞은 고래, 그 고래를 잡기 위해 해양으로 나가는 배 등이 그려져있는데 10명 이상이 긴 나무배에 타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고 잡은 고래를 끌고 가서 살을 발라내는 일을 하는 내용이 자세히 묘사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 암각화가 문자가 없던 석기~청동기 시대 포경 교육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선만 새긴 것과 면을 채워 새긴 것들로 나뉘며 이 둘이 겹쳐진 부분에 면을 채운 것이 더 깊게 파였기 때문에 이것들이 더 먼저 그려졌다 추정하며 면을 채운 것들은 대부분 고래 잡는 내용, 선만 새긴 것들은 육지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를 통해 학자들은 이 지역에 예전에는 고래가 진입할 수 있는 해안 지대였으나 훗날 지형이 바뀌어 내륙 지대가 되고 여태껏 고래를 잡던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반구대 암각화가 있던 곳까지 바다였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곳에서 당대 바다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하고 그때 이 지역이 바다였다면 태화강 상류를 따라 선을 긋고 낙동강 하류에서 북동쪽 양산단층을 따라 선을 그었을 때 두 선이 만나며 가르는 한반도 남동쪽 지형이 섬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의 해발고도가 그 서쪽의 양산단층평지보다 높기 때문인데 그 보다는 기후 변화 등으로 고래가 잘 잡히지 않자 육상 생물 사냥으로 생계방향을 틀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이 암각화에는 사람도 그려져있는데 깃텃 등을 온 몸에 장식하고 굿을 하는 사람, 그 곁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으며 여기 그려진 남자들은 성기가 크게 묘사되어있는데 자손 번성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것으로 추정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반구대의 거대한 바위에는 높이 약 5미터, 너비 약 8미터에 걸쳐 여러 가지 동물들과 사냥 도구 및 사냥하는 모습 등이 빼곡히 그려져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한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대를 이어 가며 그려 나간 것으로 보고 있느데요 우리나라에는 신석기 시대를 지나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적 선사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꿈과 희망을 바위 그림으로 새겨 놓았습니다. 한마디로 반구대 바위는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린 선사 시대의 도화지였던 것이지요. 다양한 그림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요. 배, 그물, 작살, 방패 등 사냥과 물고기 잡이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해 개, 호랑이, 표범, 사슴, 멧돼지, 여우, 늑대 등의 뭍짐승과 물개, 상어, 거북, 고래 등의 바다짐승이 새겨져 있고 또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 탈을 쓰고 있는 주술사, 그물이나 울타리에 갇혀 있는 짐승 등 구체적인 실제 모습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