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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재규어247
푸른재규어24724.03.11

고구려의 후손인 발해는 어떻게 세워졌나요?

안녕하세요?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의 후손인 대조영이 나라를 세웠잖아요~ 근데 그땅의 토착세력들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발해를 세울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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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동북쪽 이민족들을 통제 관리하였는데 요서지방의 영주 지역에 고구려 유민, 말갈족, 거란족이 모여 살았습니다. 틈틈히 고구려의 재건을 노리고 있던 대중상, 대조영, 걸사비우 등이 조금씩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나라의 가혹한 통치에 반발한 거란 세력이 족장인 이진충과 손만영을 필두로 반기를 들었고, 당의 유주 지역까지 공격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여기서 대중상,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 집단과 걸사비우를 필두로 한 말갈족 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사실상 고구려 유민과 말갈은 고구려 연합국이었으니 같은 국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란이 장기화되어 당에서도 군대를 보내어 역공을 하였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갈 시점에 대중상,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집단과 말갈족은 요서 지방의 동만주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동모산을 근거로 주변에 성을 쌓고 연해주까지 확장하였고, 고구려를 이은 새로운 국가를 선포하였고 국호를 '진'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동모산에도 옛 고구려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있었으나 고구려 부흥의 명분이 있어 큰 전쟁 없이 협상 및 회유 등으로 영토를 복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대진국이라고 불리며,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갔으며, 해동성국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대중상 이후 대조영이 왕이 되자 당에서는 막강해진 진국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에게 발해군왕이라는 형식적인 책봉 서신을 보내왔으나 대진국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황제국으로서 면모를 이어갑니다. 그렇지만 당시 당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큰 시대라 대진국도 외교적으로 발해라는 국호를 병용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698년 건국 시에는 진이었다가 713년에 발해라는 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왕 때 왕권을 강화하는 시기인 774~779년에 국호를 고려(고구려도 장수왕 이후 고려로 국호 변경)로 썼다가 왕권강화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780년부터는 일본의 천황에게 문왕이 보낸 서신에도 발해국왕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는 발해로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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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장군이었던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웠습니다.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으며, 그들은 말갈족의 여러 촌락을 통솔하였으며

    발해의 건국으로 만주는 계속 우리민족의 활동 무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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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했습니다.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고 이에 당은 고구려 유민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강제 이주하는데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 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696년 5월 거란추장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 조홰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봉기,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 대사리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 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이동 도중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대사리 걸걸중상이 전사하면서 대조영이 무리를 이어 받은 것으로 추정하며 대조영은 추격해 오는 이해고와 당나라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크게 무찌른 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해 698년 길림성 돈화현 부근에 위치한 읍루의 동모산 기슭을 차지하고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정복해 도호부의 한족들을 노비로 강등시키면서 진국을 건국, 말갈 촌장, 고구려 촌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진국왕이 됩니다. 고왕 대조영은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당나라는 대조영의 발해 건국이 기정사실화 되고 돌궐 , 거란, 해 등의 압력으로 요하 유역과 만주 일대를 발해에게 정복당하고 안동도호부도 멸망하자 발해인들을 달래기 위해 705년 책봉을 시도하나 불발되며, 713년 대조영은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이 되며 홀한주 홀한주도독의 벼슬을 추가, 당나라는 발해의 번성에 굴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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