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어떤것이 원인이 되었나요?
1800년대 조선시대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무엇이 원인이었으며
무엇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 난인지 그리고 그 결과와 조선정부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홍경래는 또 어떤 인물이었는지 출신성분등을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811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5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반란이다. 조선 후기 봉건사회는 17, 18세기에 이르러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토지 겸병이 광범하게 진전되어 지주전호제(地主佃戶制)가 양적으로 팽창되어 갔다. 특히 이앙법(移秧法)·이모작으로 대표되는 농업 생산기술의 변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의 분해가 촉진되었다.
이 결과 지난날의 봉건지주와는 다른 서민지주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주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개선된 농업 생산기술과 시장의 확대라는 유리한 여건 속에서 차경지(借耕地)의 확대를 통해 상업적 농업을 하는 경영형부농이 성장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수의 소농민들은 몰락해 영세빈농·전호(佃戶)가 되었다.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은 유민이 되거나 임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이 시기 농민층 분해는 다수의 소농민들을 중세사회의 특징인 토지에 대한 긴박을 해체시켜 임노동자로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부농·서민지주로 양극 분해시켜 나아갔던 것이다.
상공업은 상품경제의 발달로 인해 부분적으로는 수공업자의 전업화(專業化)가 이루어지고 봉건적인 특권 상인에게 도전하는 사상인(私商人)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개성상인이나 의주상인들은 대외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등 상권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봉건적인 신분 질서의 구조에도 부(富)를 통한 신분 상승의 확대로 양반의 증가와 평민·천민의 감소, 몰락양반의 다수 존재라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양반 신분의 절대적인 권위도 동요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경래의 난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에 시달리던 농민들과 부당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어 오던 평안도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 등이 평안도에서 일으킨 농민 봉기였다(1811).
-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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