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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5.03

우리나라에 전세라는 개념은 언제 처음 도입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전세사기로 빌라등이 정말 거래절벽이라는 뉴스가 나오네요 문득 이런 전세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역사상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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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 전세가 제도적으로 발달하게 된 배경은 취약한 제도권 금융 구조로 인해, 사적 임대차 형태인 전세가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화도 조약 당시로 거슬러간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지만[2] 본격적으로 전세 제도가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이후라고 본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농촌 인구들이 대거 대도시로 몰려 주택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1970년대 경제 성장기 때 주택 가격이 가계(家計) 지불 능력보다 비싸고 주택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시장 상황에서 형성됐다. 고도 성장기에 주택 구매 수요가 많았지만 대출 금리가 높을 뿐만 아니라 주택 금융의 미비로 대출 자체가 어려웠다. 당시는 매우 좋은 직장을 가지거나 하지 않으면 주택 소유자를 포함하여 일반인들이 제도권 은행에서 목돈 대출을 받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힘들었다.[3] 그리고 집을 가진 임대인도 임차인으로 부터 받는 월세, 사글세로는 목돈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개인들은 돈을 빌릴 방법이 없었던 시대였다. 모든 자본이 산업, 특히 수출 산업 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집주인들이 주택 구입 과정에서 모자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 집을 전세의 형태로 임대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전세 보증금이 이자를 내지 않은 은행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고도성장기의 한국에서는 그 돈을 은행에만 넣어놔도 은행 이자가 10%이상 붙었다. 심지어 IMF 이전에는 은행 이자는 세금도 없었다. 세입자들도 시골에서 올라올 때 집이나 논을 팔아서 올라왔기 때문에 번거롭게 월세를 내기보다 목돈을 맡기고 사는 게 편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세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아니라, 집주인과 세입자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사적금융제도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세가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중공업 육성, 수출 드라이브, 중동 건설 붐 등으로 GDP 실질성장률이 연평균 11%에 달했다. 살림살이가 상대적으로 핀 서민들은 좋은 집을 찾았고 민간 건설사들은 이에 부응해 아파트 공급을 늘였다. 1975년 9만여 가구에 불과했던 아파트가 1980년에는 37만여가구로 증가했다. 집값이 빠르게 올라갔다. 당시 은행은 기업에만 돈을 빌려줬을 뿐 가계 금융은 등한시하는 상황이었다. 아파트를 사고 싶지만 서민들은 돈을 빌릴 곳이 없었기에 사적 주택금융인 전세가 크게 증가하였다.

    출처: 나무위키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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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전세제도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주택임대차관계가 형성되었고, 조선말기 전세가격은 기와집과 초가집에 따라 달랐으며 보통 집값의 반 정도로 전세값을 받았고 비싼 곳은 집값의 7~8할에 육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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