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는 한반도에 방파제 역할을 해왔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이나 중국의 통일왕조가 들어서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고구려가 버티지 못했으면 신라나 백제도 위험했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두차례의 수의 침입을 막아내교 당태종의 대군도 안시성 싸움으로 잘막아내었죠. 수는 대운하와 고구려 정벌 실패 등으로 무너졌으며, 댕 태종은 유언으로 고구려를 치지 말라고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도 국력을 소모하고 피해가 컸지요. 당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해야했고 이 과정에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습니다. 연개소문은 대당 강경책으로 일관했습니다.
한편 6세기 이후 신라는 국력을 키우고 한강유역을 확보하고 영토를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6세기 외교지형을 잘 활용했던 신라는 당과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죠. 백제가 신라를 계속 공격했기에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러 간 김춘추는 대당외교의 선봉으로 삼국통일에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북방경계에 국방력을 쏟았던 고구려는 남쪽에서 북상하는 나당연합군을 맞아 패배했는데, 체제 이완과 지도층의 분열이 원인이 되어 붕괴되었습니다. 수, 당의 침입을 오랫동안 맞아 싸우면서 국력이 약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가장 늦게 체제를 정비하고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외교력을 발휘한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된 것입니다. 당의 대군에 물자와 군량을 공급할 정도의 탄탄한 경제력도 한 몫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