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석봉은 명필가로 유명했는데, 결국 명필가는 어떤 일을 한 사람인가요?
현대에서는 손글씨도 많이 필요 없고, 기계로 작업을 하다보니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벼슬을 주진 않잖아요.
조선시대 명필가로 중국까지도 이름을 널리 알린 한석봉은 결국 글씨를 예술적으로 쓴 사람을 뜻하나요?
아니면 문장력도 뛰어나야 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석봉(한호)는 서예의 명인으로 명나라 주지향이 황희지와 안진경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다고 비유한 인물입니다. 그는 명나라 사신을 갈 때마다 연석이 벌어진 자리에서 특유의 정교한 필법을 글씨를 써서 동방 최고의 명필로 칭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이여송도 한호의 친필을 부탁했습니다.
한호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 보필에 공이 있어 1605년 선무원종공신 1등, 호성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필가, 한자뜻으론 글 잘쓰기로 이름 난 사람 을 뜻하는 단어 입니다.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인데, 사실 글솜씨라는게 글자 자체에 대한 의미도 있지만 말씀하신데로 글에 포함된 내용도 함께 글솜씨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사료들을 분석해 보면 한석봉은 당시 사신을 따라 명나라에 가곤 했는데 당시 그가 쓴 글을 보고 명나라의 관료들이 그의 글을 사가서 벽에 걸어두고 감상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글에 포함된 내용보단 글이 써진 서체 그자체를 더 높게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존 글자체와는 다른 개성을 글씨체에서 찾았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석봉은 기록상 그냥 글씨"만" 잘쓰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문장력까지 뛰어났다면 애초에 과거시험에서 고작 32위로 끝날리도 없고
그 후에도 진급을 못하고 사자관이라는, 서기 비슷한 직위에서 머무르기만 할리가 없죠.
심지어 실력도 모자란데 성격도 별로였단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글씨 하나는 진짜 끝장나게 잘 써서 해외에서도 글씨좀 써달라고할 정도 였기 때문에
각종 건물의 현판을 담당 하거나 중국 파견때 무조건 한석봉의 글을 들고가거나
임진왜란때도 중국 관리 접대용 필사본을 만들거나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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