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태동한 유학이 유교로까지 발전하게된 원인은?
공자의 사상과 가르침으로 태동한 유학 즉, 인간의 본성과 사회 윤리, 지도자가 갖춰야 될 덕목 등 인간 관계와 사회와 국가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고민이 주된 유학이 후대에 종교에 가깝게 발전하게 된 연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이것 부터 알고 가셔야 합니다.
종교가 다른 분야랑 분리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종교=세계관=과학=철학=도덕=법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유학에서 유교로 변화된 지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도 구분이 힘들어요
또한 현대식으로, 구체적으론 서양이 구분한 각종 분야 구분으론 유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종교가 된 이유라기 보단 사회의 주류가 된 이유
라는 뜻으로 여기고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스러운 배경에선 누구나 "왜 이러고 사나" 정도의
철학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온세상이 전쟁터였으니 까요
그리고 전쟁때문에 기존의 지배계층이 철거당하면서
재능과 여건이 충분하다면 새로운 지배층이 생겨날 가능성이 생겼고
이 새로운 도전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사용할 새로운 통치도구가 필요해졌습니다
때문에 당시에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것이 바로 최고의 통치도구다"라면서 자기가 만든
사상을 알리려 했고, 그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이 바로 바로 제자백가 입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대표적으로 10개 학파가 있었는데 수 있었는데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도가
마치 기독교의 아가폐 처럼, 평등한 사랑으로 고통을 없애자는 묵가
강력한 법을 세워야 한다는 법가
정교한 논리를 추구한 명가
군사전략을 연구하면서 이것을 실생활에도 활용하자고한 병가
외교적인 노력으로 세력 통일을 시도한 종횡가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농가
이야기꾼 모임인 소설가
마지막으로 모든 제자백가의 사상을 모으면 완벽할꺼라는 잡가
이렇게 10가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후대에 편의를 위해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같은 "가"에 속한 사람끼리도 아예 교류가 없거나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답이 너무 길어지니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
소설가는 아예 후대에 종횡가,농가,잡가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면서
나머지를 모아 추가한 느낌이니 춘추 전국시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도가와 묵가는 계급제도를 버리자고 주장했으니 지배층에게 쓸모가 없고
종횡가와 병가, 명가, 농가는 각자의 분야에선 뛰어나지만
모든 경우에 통할 "통치철학"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이었습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유가와 법가 뿐이죠. 잡가는 단독분야라기엔 좀 애매 하니까요.
그런데 법가는 강력한 군주의 엄격한 통치를 추구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독재자 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런 중앙집권적 사상은 완벽한 철인이 아닌이상
매우 타락하기 쉽죠.
유가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식으로 다른 라이벌들의 단점이 워낙 치명적이라
유가를 연구하는 유학이 후대의 주류가 되었고. 유학이 다른 학파의 사상또한 받아들이면서
발전하면서 유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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