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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5

'사상보국연맹'은 어떤 단체였었나요?

안녕하세요.

옛날에 있었던 '사상보국연맹'이라는 단체는 어떤 단체였나요?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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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누리함
    누리함23.05.25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사상범 보호관찰소의 외곽단체로 1938년 7월 24일에 조직되었습니다. 민족운동 또는 좌익운동과 관련된 사상 전력자 중 친일 변절한 자를 맹원으로 하였으며, 그 수효는 1939년 7월 30일 현재 2,765명에 달하였습니다.


    이들은 ① 황도정신의 앙양과 내선일체의 강화, ② 반(反)황국사상의 파쇄·격멸, ③ 국책협력·전시협력의 강화를 강령으로 하면서, 맹원들의 사상정화, 생활쇄신 및 주의자의 포섭공작을 위해서 각종의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1938년 12월부터 발간된 기관지 『사상보국』의 발행과 신궁참배, 일본군위문, 헌금갹출, 기타 반공시국강연회, 좌담회, 일본정신연구회 등의 개최였습니다.


    또한, 맹원들은 형무소를 방문해서 복역중인 민족·좌익운동자들에게 설득공작을 벌였습니다. 창설 당시 본부조직 밑에 경성·대전·공주·개성·인천·청주·춘천지부 등을 두었으나, 사상범 보호관찰소와의 밀접한 연결을 위해서, 1938년 8월 27일부터 조직을 개편하였습니다.


    즉, 지부는 전선 7개처의 사상범 보호관찰소 소재지인 경성·평양·함흥·청진·신의주·대구·광주에 두며, 그 밑에 분회를 두는 조직입니다.


    지부장은 서병조(徐丙朝:대구)·이승우(李升雨:경성)·현준호(玄俊鎬:광주) 등 보호관찰심사회 관계자이며, 연맹의 중심인물은 사상 전력자인 김두정(金斗禎)·김한경(金漢卿)·박영희(朴英熙)·장덕수(張德秀) 등이었다. 1940년 12월 28일 재단법인 대화숙(大和塾)에 통합됨으로써 해소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은 1938년 조직된 친일 전향단체입니다.

    민족운동 또는 좌익운동과 관련된 사상 전력자 중 친일로 변절한 자 2000여명을 구성원으로 한 조선사상범 보호 관찰소의 외곽단체로 1938년 7월 24일 부민관에서 결성되었습니다.

    목표는 구성원들의 사상정화, 생활쇄신, 및 항일운동가 포섭공작 등이었습니다.

    조직은 본부 아래 사상범보호관찰소가 있는 7개 도시에 두며 그 아래 분회를 두었고 간부직에 서병조, 이승우, 현준호 등 보호관찰심사회 관계자들이 포진했으며 중심인물로 사상전력자인 김두성, 김한경, 박영희 , 장덕수 등이있었습니다.

    강령으로 내선일체의 강화, 반국가적 사상의 격멸, 국책협력, 전시협력의 강화 등을 내세웠고 1938년 12월부터 발간된 기관지 사상보국의 발행과 군인원호 행사, 신사참배, 시국강연회, 현금갹출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친일 사상 고취를 전개했으며 복역 중인 민족, 좌익 운동가들에게 설득공작을 벌렸고 비전향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취직알선운동을 했습니다.

    1940년 12월 28일 재단법인 대화숙에 통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8년에 조직된 사상교양 단체이다. 이 단체는 일제가 더욱 강력하게 사회주의 제거에 나서는 것이 1차적인 목표였다. 일제는 조선인 전향자들을 구성해 이 단체를 조직하여 만들게 했고, 일본군 위문, 국방헌금 모금 같은 일상 활동과 함께 비전향자 포섭, 반공좌담회 개최 등의 사상통제 활동을 하게 했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