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행위를 구실로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폐위되어 태안, 그리고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나중에는 제주도로 변경되어 그것에서 1641년까지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위리안치 되어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매우 고단하게 생활했습니다. 그의 유배 생활 중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 내내 실낯같은 복위 희망을 품고 관비에게 까지 천대와 모욕을 견뎌내고 생을 유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1641년 67세의 일기로 독살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