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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기린210
넉넉한기린21024.03.11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는 진짜 며느리를 쫓아냈나요?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와 며느리 숙의 윤씨 사이의 고부갈등! 인수대비는 진짜 며느리를 쫓아냈나요?쫓아냈다면,그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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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수대비 한씨와 왕비 윤씨는 물과 기름같이 섞일 수 없는 생각과 배경을 지닌 여성이었다. 인수대비에게 막강한 친정 세력이 있었다면, 윤비는 그렇지 못했다. 가난한 대간(臺諫) 집안 출신의 딸로서 그를 후원해 줄 부친도 없는 신세였다. 또한 유교적 부덕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강요했던 인수대비와 달리 윤비는 자유 분방하고 사랑을 중요시했다.

    성종 주변에는 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윤비는 이를 참지 못했다. 성종이 엄귀인과 정귀인을 총애하자 윤비는 왕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다. 왕실 여성들 사이에는 이른바 압승(壓勝)이라 불리는 이른바 저주행위가 있었는데, 들키게 되면 큰 화가 되었다. 윤비의 처소에서 극약인 비상과 이를 바른 곶감이 발견되자 인수대비와 성종은 이 곶감이 왕과 후궁을 죽이려는 의도라 생각했다. 야사에는 윤씨가 성종과 다투면서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고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결국 윤비는 왕비가 된지 8개월 만에 폐비가 되어 사가로 쫓겨났고,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아 결국 1482년(성종 13) 8월에 사약을 받고 사사되기에 이르렀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비 윤씨는 성종과의 부부싸움 도중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내어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으며, 이로 인해 폐출되어 사저로 내보내졌습니다. 이후 3년 뒤 성종 13년(1482년)에 임금이 내시를 보내 폐비 윤씨를 염탐하게 했고, 내시가 폐비 윤씨가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는 거짓보고를 하여 인수대비는 폐비를 사사하라고 명령하였고 성종은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궁들에 대한 투기 때문에 왕비 자리에서 쫒겨나는 성종의 비 윤씨는 폐위된 지 3년후

    시어머니 인수대비애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는 페비윤씨를 며느리로 들일 때는 재색을 겸비한 이로 보았으나 갈수록 패악질이 심해지고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사악한 짓을 한 폐비윤씨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임금인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다는 이유로 사가로 쫓아냈고 결국은 사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