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과정에서 비롯된 전쟁으로 양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 강화를 위해 대결했습니다.
당시 청일 양군의 군사력에서 병력은 청이 95만명 가운데 10만명, 일본군이 28만명 가운데 17만명이 파견되어 일본군이 더 많은 병력을 파병했습니다. 무기 체제에서 외형적으로는 청나라는 신식 무기 만리헬식 연발총, 마우저 소총, 개틀링 기관총 등 갖추고, 해군 역시 북양함대를 바탕으로 아시아 최강을 자부했습니다. 일본군의 주력은 무라타식 소총 등과 일부 부대에는 연발 소총이 지급되었으나 화력면에서는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서구식 군제와 근대식 편제를 갖추고 있어 효율적으로 화력과 기동을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적 군제와 조직 개편, 전술적 기동과 대응, 기습 작전 등을 활용하여 정치적 분열과 군비 유용 등 구조적 결함에 시달리던 청군의 결함을 이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