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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왕을 이어 등극, 한 해 빠진 8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 말 그대로 장수한 왕이다. 이름은 거련(巨連 또는 巨璉)이었다. 장수한 오랜 시간, 그는 아버지를 이어 고구려를 한반도에서 태어난 나라 가운데 가장 큰 나라로 만들었다. 그의 이름 가운데 연(璉)은 호련(瑚璉)을 말한다. 호련에 곡식을 담아 천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성스러운 제기인 것이다. 장수왕은 성스러운 제기 가운데서도 큰 그릇이었다. 광개토대왕비에서 보는바, 장수왕의 시대는 문화적으로도 벌써 절정의 시기에 와 있었다. 이만한 문장과 이만한 규모의 비석을 고구려는, 아니 장수왕은 자신의 문화 상징으로 만들었다. 장수왕은 장수를 넘어 문화의 왕이었다.
장수왕은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최근 평양의 위치에 대해 다른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고구려가 한반도 안의 주권국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는 곧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이어지는데, 475년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죽이기도 하였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는 남쪽으로 아산만부터 지금의 경상북도 일부를 차지하였다.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한반도를 한번 요동시켰다. 그것이 불안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면, 하나의 동인(動因)이 되어 서로가 자극을 받고 발전을 이룬 계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자주 접촉하고 교류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안의 사람들이 하나의 동질성을 갖추어 간 것이다. 그렇다면 장수왕은 한반도의 사람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공글리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출처 : 인물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