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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23

궁예가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궁예는 자신이 스스로 신라의 왕족이었음을 주장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어째서 자신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새로운 신라가 아닌 후고구려로 정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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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이거 부터, 궁계가 세운 나라의 맨 처음 이름은 고려입니다

    다른 고려들이랑 구분하려고 후고구려라고 나중에 이름붙여진거죠

    애초에 고구려도 원래 고려였다가 왕건 고려랑 구분하려고 고구려로 개명당한 거니까요.

    그리고 후삼국은 신라가 결국 망해서 생긴 것이니

    신라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명분상으로도 직계 왕족이면 모를까 방계인지도 의심되는 궁예가 신라라고 해봤자 아무도 인정안할거고

    탐관오리에 시달린 백성들도 신라를 싫어할거니까요

    거기에 후삼국 시기에 관한 기록은 승자인 고려의 기록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왕건 찬양을 위해 일부로 견훤과 궁예에 관해서 폄하했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만큼

    궁예가 진짜 자기가 왕족이라고 하고 다녔는지 부터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단 삼국사기에 궁예는 헌원왕 또는 경문왕의 손자라고 기록되었는데

    이게 시간상 불가능한 기록이라서 최신연구에선 무시당하는 부분이고

    그 밖의 기록은 정확히 누구의 아들이라고 말을 안하고 그냥 "신라왕의 아들"이라고만 전해지기 때문에

    고아가 나라 세우려고 혈통조작한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신라 멸망 직전에는,다른 나라도 그랬지만, 족보 조작은 부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서

    견훤도 혈통 조작 썰이 있고 왕건의 할아버지도 자기가 당나라 왕족이라고 사기친 적이 있어요

    거기다 궁예는 남아있는 기록을 반만 믿어도 정신병의심이 들 정도로 허풍이 심한 사람이었으니

    (어지간한 불교 신자는 감히 자기를 미륵불이라 주장하지 못하죠)

    스스로 고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붙였지만, 이 고려 프로파간다가 잘 먹히지 않고 오히려 신라나 백제 출신들이 싫어해서

    904년에 마진, 911년에 태봉으로 나라이름을 2번이나 바꿨습니다.

    그리고 왕건이 통일에 성공하고 고려를 세우면서

    내 고려가 진짜 고려다 라는 의미로 쓸데없는거 하나도 안붙은 순정 고려를 나라이름으로 쓰고

    옛날 고려는 고구려로 개명, 궁예네 나라는 궁예의 막장성을 강조하려고 후고구려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고구려를 계승하고 이에 고구려 영토에 있던 백성들의

    호응을 이끌기 위하여 후고구려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입니다. 재위기간은 901-918년입니다. 10여세에 출가하여 세달사에 있다가 힘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습니다. 한때 전국의 2/3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습니다. 관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들을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든 신정 전체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후고구려라고 국호를 정했던 것은 당을 끌어들인 신라에게 멸망당한 고구려 유민들의 복수심을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정석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신라의 왕족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후고구려를 세웠습니다. 그의 행동과 선택은 정치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궁예는 신라라는 이름을 피하고 후고구려라는 이름을 택함으로써 신라와의 대립을 피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펼친 것으로 생각됩니다.